“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너그러움(寬)과 엄격함(猛)의 중간을 취하는 데 있다. 너그러우면 정령(政令)이 서지 않고, 엄격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움직이지 못한다. ”
북송(北宋)의 제2대 황제 태종이 한 말이다. 태종은 북송 창업자 태조의 동생이다. 호방한 형과는 대조적으로 세심주도한 성격이었다. 부하들의 마음을 능히 장악하여, 송왕조의 기초를 다졌다. 또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을 정치의 중추에 앉힘으로써 신구세대 교체를 도모했다. 태종은, 위정자가 특히 유의할 점에 대해서 여몽정(呂蒙正)에게 말했다.
지나치게 엄격하면 활력을 잃고, 지나치게 느슨하면 통합이 안된다는 태종의 말을 듣고 여몽정이 찬성하는 뜻을 나타냈다. “노자(老子)의 말에 ‘대국을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작은 생선을 조리는데, 함부로 마구 쑤셔대면 모두 부서져 버립니다. 따라서 될 수 있는 대로 손을 대지 않고 조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대국의 정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은 최고지도자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일단 기본방침을 정했으면 사소한 것은 각자에게 맡겨, 성과를 올리기 쉽도록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몽정은, 과거에 합격한 지 불과 10년 남짓해서 재상으로 발탁된 신진관료의 선두주자였다.
“너그러움으로써 엄격함을 덜어주고, 엄격하게 함으로써 너그러움을 덜어준다. 정치는 이렇게 해서 조화를 이룬다.
”공자(孔子)가 자산(子産)의 정치를 평한 말이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대정치가 자산을 존경했다. 자산은 정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유연한 정치, 또 하나는 엄격한 정치이다. 유연한 정치로 백성들을 복종시키는 것은 웬만큼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어렵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엄격한 정치를 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예를 들면 불과 물 같은 것이다. 불의 성질은 격렬해서 보기에 무서우므로 사람들은 겁을 내어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불에 의해서 죽는 사람은 적다. 그러나 물의 성질은 매우 약해서 사람들은 물을 겁내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물에 의해서 죽는 사람이 많다. 유연한 정치는 물과 같은 것이어서, 얼핏보면 쉬운 것 같지만 대단히 어렵다.”
공자는 자산의 의견에 찬동하고 말했다.
“백성들은, 위정자가 고삐를 느슨하게 하면 버릇 없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위정자에겐 엄격함이 필요해 진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계속되면, 백성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또 다시 고삐를 느슨하게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처럼 관(寬)과 맹(猛)이 서로 보완함으로써 비로소 정치는 중용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 100일을 맞이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말을 해 국민을 불안하게 했었다. 그래서 한나라당으로부터 “불법 집단행동과 국가기강 마비는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과 무분별한 포퓰리즘, 독선적 국정운영이 초래한 자업자득이요 자승자박”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들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자유가 좀 없다. 가끔 감옥살이 같다는 생각도 한다”고 토로했다. 5·18한총련 시위, 교육계의 연가투쟁 선언, 공무원 노조의 파업 시도 등으로 복잡한 심경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분이 대통령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권위주의와 대통령의 권위는 엄연히 다르다.
물론 대통령이 왕(王)은 아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청와대 사람들이 북송 태종과 여몽정이 한 말, 그리고 공자와 자산의 어록을 항상 명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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