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난파동요제가 화성시청 대강당에서 화성문화원 주최, 화성시 후원으로 합창 8팀, 중창 7팀이 각 학교의 명예를 걸고 나와 열렸다. 해를 거듭할수록 수준이 향상된 어린 천사들의 하모니는 강당을 꽉 채운 관중들을 감동의 물결로 가슴 뜨겁게 했다.
특히 감동받은 일은 홍난파 생가 정화추진위원장(정희준)이 소망 2가지를 말했는데 첫째, 어릴때 동요를 많이 부르고 자라서는 클래식음악을 많이 부르고 둘째, 난파 생가에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꽃대궐 같은 집을 짓는 것이라고 했다.
홍난파(홍영후) 선생은 화성시 활초리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선구자이다. 요즘 친일파 대열에 님을 놓고 흠집을 내는 안타까움에 천상에서 얼마나 서러운 눈물을 흘리실까. 그 문제를 가지고 계속 시시비비를 논한다면 지방 문화의 손실이요 국익에 이로울 것이 없다고 본다. 격동하는 시대적 배경속에 암흑과 불안에 예술의 힘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가신 님의 한은 얼마나 클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또한 그가 방송국에 근무할 당시 흥사단 단가를 작곡한 일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옥고를 치르면서 고문당한 일도 우린 알아야 할 것이다. 일제의 36년의 설움을 ‘봉숭아’ 노래로 표현한 업적, ‘고향의 봄’ 등 주옥같은 음악들은 지금도 모르는 이 없다. 얼마전 우리 화성시 사회단체들이 생가 주변에 꽃동산을 만들면서 생가 복원 사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얼마나 기뻐했던가. 필자는 봉숭아씨를 초가 생가 울타리에 뿌리고 그해 여름 흐드러지게 핀 봉숭아 꽃무리속에서 활짝 웃으신 님의 얼굴을 본 듯 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교향악단 지휘를 했고, 최초 조선동요집을 냈고, 최초 음악잡지를 낸 문학가요 음악가인 홍영후 선생의 생가 복원 사업이 속히 이루어져 아름다운 생가에서 어린 꽃들의 난파 동요제가 활초리에 메아리칠 날을 염원해 본다.
/지현숙.대한어머니회 경기도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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