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송을 말한다

TV 시청은 현대인에게 일상생활화 하였다. 그 누구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루에 일정 시간을 TV 시청에 할애하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 전엔 ‘신문에 났더라’는 말이 ‘TV에 나왔더라’는 말로 뒤바뀌었을 만큼 전파 매체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상품도 그것이 무엇이든 TV 광고가 아니면 소비의 공신력을 지닐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 바람에 TV 3사가 독점적 경영의 호황을 누리면서도 사회공익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TV 방송의 3대 기능인 보도·교양·오락 분야를 여기에 다 언급하기엔 지면의 제약이 따른다. 해서, 오늘은 우선 오락 프로그램 분야만 언급하겠다. 시청률 경쟁을 시청자의 질적 수준보다 양적 위주로 하여 권위보단 인기에 연연하는 제작 방향이 고질이긴 하나 오늘의 논제는 아니다. 문제는 TV의 오락 기능이 사회의 마이너스 요인이 되어선 안되는데 있다. 그 폐해를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다. 청소년의 언어 순화를 TV 오락프로그램이 해친다는 여러 경로의 지적이 이래서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다. ‘이놈! 저놈’하는 소리는 예사고 심지어는 ‘죽인다’는 전파가 거침없이 안방까지 배달된다.

국적불명의 쇼가 난무하고 드라마는 현대극이든 역사극이든 비속적이다. 예컨대 현대극은 성실 근면한 서민을 주인공 삼기보다는 출세 지향주의 인물을 화제 삼는 것이 통상례가 됐다. 같은 조선조 당쟁사 소재도 부질없는 당파 싸움으로 묘사하기 보단 정당정치의 효시로 보는 새로운 조명이 요구된다. 실제로 사색당파는 지금의 정당보다 더 정책적이었으며 정치적 의리가 더 강했다. 또 부여나 고구려 그리고 발해사 등은 우리의 조상이 중국과 러시아까지 세를 확장했던 자랑스런 역사다. 고구려 건국의 어머니인 소서노 같은 여걸은 이같은 사극의 좋은 소재이며 또 단행본 소설로 출간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오락 프로그램의 포커스를 혁신하고자 하는 자정의식이 있어야 한다. 가령 ‘내속을 보여주오’ 같은 건강프로는 교양을 겸한 오락 프로그램이면서 창의적 진행 방식이 크게 돋보인다. 오늘 TV방송을 말하는 것은 봄철 개편이 대체적으로 개선된 게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개선엔 꼭 계절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즉각적이고 부단한 개선 의지를 촉구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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