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삿대를 저어라’ 황정자가 부른 트로트풍의 가요 ‘처녀 뱃사공’이 나온 것은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이다. 사회질서가 그런대로 안정된 시기였다. 당시엔 지금처럼 강에 다리가 없어 행인은 대개 도선장의 나룻배를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나이든 사공이 어쩌다 병들어 누우면 아낙네나 처녀 사공이 노를 잡는 일이 많았다. 젊은 장정은 모두 군대에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난 첫 해에 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져 강 나루가 전쟁터가 됐을 적엔 군인들이 나룻배를 징발했었다. 어느 쪽 군인이랄 것 없이 다 그랬다. 어렸을 적에 본 것이지만 기억한다. 나루터 초병이 초소에서 여대생을 강간했다. 피란 길의 그 부모는 외면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였고 살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 명문 여대의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다. 1·4후퇴 땐 기차의 곳간차마다 피란민이 꽉 차 할 수 없이 곳간차 지붕으로 올라간 사람들끼리 서로 떠밀어 떨어뜨려가며 자릴 잡았다는 얘길 피란민들 한테 들었다.
전쟁터에서 작전 중인 군인들 곁을 지나가면 딱 총 맞아 죽기 십상이다. 행인이 적대 군인들을 만나면 지나면서 본 상황을 캐묻게 되어 병력, 장비 등 비밀이 탄로나기 때문에 번연이 아무 죄없는 민간인 줄 알면서도 자기들 군대가 살기위해 쏴 죽이는 것이다. 어느 쪽이라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동네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끼리 평소의 감정을 이념으로 빗대어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곤 한다. 전쟁은 이처럼 모든 사람들을 미치광이로 만든다.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가운데 법이고 인권이고 그런 것 따윈 다 개나발 같은 소리가 된다.
그래도 그 처참했던 6·25 한국전쟁은 지금 생각하면 원시적 전쟁이다. 만약에 또 전쟁이 터지면 핵 무기든 미사일이든 뭐든 간에 사람이 무더기 무더기로 도륙된다. 전쟁 중엔 모든 자가용 차량은 운행이 동결되어 길에 나섰다가는 총질 당하고, 수도며 가스가 끊겨 주민생활은 뒤죽박죽 되면서 가치관이 혼돈된다.
예컨대 물은 금보다 귀해지고 고층아파트 베란다마다엔 가구를 부숴 먹거릴 끓이는 연기로 꽉 차고, 화장실 처리에 집집마다 골머리를 앓겠지만 이런 고통쯤은 그래도 약과다. 설사, 재발된 전쟁이 통일로 끝난다 해도 한반도는 유령의 땅이 된다.
하노이 정부에 의해 사이공 정부가 무너지고 나서 나타난 놀라운 현상은 그렇게 볼 수 없었던 사이공 정부 요로가운데 간첩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하노이 정부는 또 제세상 만난 것으로 기대했던 사이공 정부하의 친공 인사들을 말만 많은 위험 인물로 보아 모두 숙청했다. 지금 이 시대에 국기를 지켜야할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게 또 무엇이 있겠는가, 평화는 평시에 잘 지켜야 한다. 전시에 되찾으려는 평화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꼭 50년이다. 그 옛날의 처녀 뱃사공도 손주, 많으면 증손을 두었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할머니의 소망은 후대가 제발 전쟁없는 평화를 누리는 것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기를 뒤흔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전쟁, 특히 동족상잔의 전쟁은 민족적 범죄다. 전쟁은 힘을 지녀야만이 막을 수가 있다. 잔인한 ‘6월의 노래’는 이제 끝내야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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