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이 그토록 절실한 건가?

당신은 무엇을 위해 파업하고 또 그토록 길거리에서 외쳤는가. 그같은 저마다의 주장이 과연 근로현장을 비우고 또 교실을 비워야 했을만큼 당장 절실하고 과연 시급한 것인지. 불경기로 장사를 망치는 여러 자영업자들, 자녀가 선생없는 교실을 지켜야 했던 학부모들은 정말 착잡한 심정으로 파업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직장을 갖지 못한 청년 백수들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규탄해대는 그 내용보다 그들의 직장이 한 없이 부러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파업은 이로도 모자라 30일엔 약 300개사가 참여하는 20만여명이 또 예정되고, 그러고도 7월초에도 이어질 모양이다. 세상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는 사회 저변의 개탄이 높다. 목소리를 높여 어떻게든 정부를 밀어 붙이기만 하면 뭣을 챙겨도 남는 게 있다고 보는 강성기류의 파업 만능시대가 어쩌다 됐는지 모르겠다. ‘파업하기는 좋은 나라, 기업하기는 나쁜 나라’라는 좋지 못한 평판이 세계화 되어버린 현 시점에서 그같은 강성 경쟁이 과연 유익한 건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본과 노동은 기업의 양수레바퀴와 같아 다 소중하지만 자본이 없으면 직장이 있을 수가 없다.

물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지만 지금처럼 파국 불사의 막가는 국면으로 치달을 만큼 절대적으로 잘 못되고 절대적으로 매도돼야 한다고는 심히 믿기가 어렵다. 하루 파업하면 수십억, 수백억원씩 나는 손해가 자본의 불이익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노동가치도 저하된다. 파업해서 얻는 것이 노동가치 저하와 상쇄될 수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파업은 또 노사간만이 아닌 사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심대하다. 이같은 영향에도 사회가 보는 노동계에 대한 시각이 관대할 수 있는가도 깊은 고려가 따라야 한다.

새로운 노사문화의 확립은 물론 사용자측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지만 노동운동문화의 성숙으로 새 노사문화를 이끌 책임이 또한 노동계에도 있다. 이 사회는 기성 세대의 것만은 아니다. 후대에 잘 물려 주어야 한다. 기를 쓰고 벌이는 줄 파업이 정말 좋은 후대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헤아려 책임있는 행동이 있기를 당부한다. 노조가 사회의 전부는 아니다. 한 구성 분야다. 지금같은 노동운동일 것 같으면 사회 전반을 혼란케 할 권리는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