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覺’자도 제대로 모르면서

새만금개펄 살리기 삼보일배(三步一拜)로 잘 알려진 수경스님의 수행승 시절의 일화는 지금도 스님들 사이에서 회자된다고 한다.

수경스님이 선방에서 눈을 부릅뜨고 철야정진하고 있었다. 스님은 시시때때로 삼매에 빠져 선사들이 모든 번뇌와 자각이 사라지며 순간적으로 깨친다는 바로 그 ‘확철대오(廓撤大悟)’를 감지하곤 비몽사몽간에 ‘바로 이거다’며 성철스님께 한달음에 달려갔다.

“스님, 제가 깨쳤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문이 열리더니 벼락같은 호통소리와 함께 날아든 것은 성철스님의 목침이었다. 간신히 도망쳐 나온 수경스님은 자신의 경솔과 부족함을 탄식하며 수행에 정진했다. 진정 깨달았다면 성철스님의 목침이 무서워 피해서는 안되었었기 때문이었다.

수경스님이 심산유곡 선방을 박차고 나와 속세의 거리에서 삼보일배하며 ‘환경·생명’을 화두로 생사를 건 두타행(頭陀行)을 하는 것도 그때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 씨앗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속세의 온갖 미련을 헌신짝처럼 버린 출가승들이 오매불망하는 오도송(悟道頌)은 불가의 오묘함이 서려 있다.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각비각비각·覺非覺非覺)/ 깨달음 자체가 깨달음 없어 그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라네(각무각각각·覺無覺覺覺)/깨달음을 깨닫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각각비각각·覺覺非覺覺)/어찌 홀로 참 깨달음이라 이름하리오(기독명진각·豈獨名眞覺)”

임진왜란 때 3년간 승군을 이끈 청매선사의 이 ‘십이각시(十二覺時)’오도송이야말로 성철스님이 수경스님에게 목침을 던진 의미였을 것이다.

근대 한국불교의 중시조라 일컬어지는 경허(鏡虛·1849~1913) 스님은 64세가 되던 어느 날 열반을 앞둔 몇시간 전 열반송을 쓰고 홀연히 입적했다.

“마음의 달이 오직 둥금에(심월고원·心月孤圓) / 그 빛이 모든 것을 삼키다(광탄만상·光呑萬象) / 빛도 없고 빛의 대상도 없으니(광경구망·光境俱忘) / 다시 또 무엇이 있을꼬(복시하물·復是何物)”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경허 스님의 제자인 만공(滿空·1871 ~ 1946) 스님도 입적하는 당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 보며 “자네 나와 이별할 때가 되었네”라는 혼잣말과 함께 홀연히 몸을 바꾸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로 대중의 의표를 찌른 성철(性徹·1912 ~ 1994) 스님의 열반송은 지금도 큰 화제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넘친다 /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도다 / 둥근 수레바퀴 붉은 해를 토하며 푸른 산에 걸렸다”

지난 3월29일 입적한 서암(西庵·1932 ~ 2003) 스님은 생전에 열반송을 남겨달라고 제자들이 조르자 수차 그런 것 없다고 하다가 드디어 한 말씀 했다. “그 노장(老長)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는 젊은 중이었을 때 계룡산 토굴에서 뼈만 앙상하도록 정진하다가 ‘본무생사(本無生死)’ 한마디를 토해냈다고 한다. 본래 생도 죽음도 없다는 뜻이다.

열반송은 고승이 남긴 마지막 깨우침의 말씀이다. 임종계라고도 한다. 보통 4행의 한시(漢詩)로 돼 있는데 스님들은 열반을 얼마 앞두고 써놓거나 몸이 불편할 경우 제자들에게 불러 주어 쓰게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은 해탈의 경지, 곧 죽음을 말한다. 열반송은 불자가 아닌 세인들도 숙연하게 한다.

깨달음의 각(覺)자의 뜻도 모르면서 “자네 나와 이별할 때가 되었네”라는 만공스님의 열반송이 요즘 감히 자주 떠오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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