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종합관리법 이번엔 필히 제정하라

제14호 태풍 ‘매미’의 강습으로 허점이 드러난 재난·재해관리시스템을 속히 완비하기 바란다. 재해상황실 기능이 마비돼 피해가 더 늘어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중앙재해대책본부 중앙센터를 중심으로 16개 시·도 및 232개 시·군·구, 950개 주요 지점에 재해안전관리 단말기를 설치, 재해 발생시 자동 집계 체제를 갖추었는데도 무용지물이 된 것 역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피해지역 재난관리 당국이 팩스조차 쓰지 못한 채 촛불에 의지해 재해 구조에 임한 것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전국의 소방서들이 자가발전시설을 갖추었다고 하지만 정전 때 상황실 전등을 켜고 주민들에게 비상사태를 알리는 확성기 유지 정도의 수준이다. 자가발전 시설 용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지역별 재난관리를 총괄하는 기관들이 오히려 ‘재난의 대상’인 셈이다.

이번 태풍은 특히 대규모 해일 및 정전피해를 가져온 데다 강진에도 버티도록 설계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이 중단되는 등 과거 태풍 때 볼 수 없었던 막심한 피해가 발생,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더 큰 문제는 재난·재해 관련 업무가 일원화돼 있지 않아 일사불란한 대응이 안되고 있는 점이다. 현재 재난·재해 관련 법령은 13개 소관 부처별로 70여개에 이른다. 이 때문에 대형 자연재해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유형에 따라 예방·응급·복구 대책 업무가 서로 달라 효율적인 대응이 안되는 실정이다.

엊그제 정부가 국가 재난·재해를 종합관리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10월 중 정기국회에 상정 시킨다는 방침을 정했지만 이는 이미 지난 2월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소방방재청(가칭)’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재탕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소방방재청의 위상과 성격 등을 놓고 부처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설립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인데 마치 새로 마련한 것 처럼 발표해 황당하기 짝이 없다.

태풍과 홍수는 앞으로도 또 닥쳐온다. 그때 또 우왕좌왕하지 말고 재난관리시스템 완비는 물론 지나치게 세분화돼 있는 재난·재해 법령을 이번에는 정말 통합하기 바란다. 국가기간망이 망가지는 불상사가 재발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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