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전차는 철로를 베개 삼아 잠자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들의 목은 순간에 잘려졌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떠오르자 참혹한 광경이 드러났다. 광포해진 노동자들은 운이 나빴던 차장을 공격했으며, 전차를 전복시킨 후 불을 질렀다. 1899년 서울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개설된 국내 최초의 전차가 빚어낸 끔찍한 사고였다. 어이없게도 당시 전차 선로는 목침대용으로 인기가 높았다. 한여름밤에 모기·파리떼가 들끓는 비좁은 방보다는 선로를 베개 삼아 야외에서 잠자기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전차가 개통된 지 10일째였던 1899년 5월26일에는 ‘전차소각사건’이 일어났다. 종로2가 앞을 달리던 전차가 다섯살짜리 어린이를 치어 죽인 것이다. 이 광경을 목격한 아이 아버지가 도끼를 들고 전차에 달려 들었고 전차는 멈추지 않고 지나가려 했다. 분노한 군중들은 차장과 운전사들에게 돌을 던졌고 차량에 불을 질렀다. 식민지 수탈을 위한 일제의 침략 도구이면서 근대문명의 첨병인 철도와 우리 민족과의 만남은 이처럼 난폭했다.

일본은 1899년에 경인철도에 이어 경부·경의·경원선도 개통했다. 철도는 일본 군대의 이동을 신속하고 편리하게 하고 조선에서 수탈한 자원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기차에 대한 거부감은 까닭없이 돌멩이를 날리고 ‘손감자’를 먹였다.

조선 땅에 처음으로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1899년 9월 18일, 노량진과 제물포 사이 경인선이 개통됐을 때 당시 독립신문 기자가 시승기를 썼다.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달리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쳐 따르지 못하더라”

걷거나 말 타고 다니는 게 전부였던 시절의 경탄은 오래지 않아 신음으로 바뀌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철도는 일제가 조선의 골수를 빼가는 도구가 됐기 때문이었다. 비록 일제에 의해 개통은 됐지만, 9월 18일 오늘이 한국의 ‘철도의 날’ 이다. 1964년 11월 26일 제정됐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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