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문화원이 생겨난 시기는 1950년대 초기다. 당시엔 복지관·문예관·공회당·국민문화원·공보원 등의 여러 이름을 사용했다. 재정은 지방자치단체나 미국공보원(USIS)의 지원 또는 지방 유지들의 성금, 원장의 사재 등으로 충당했다. 문화원이 국가적인 보호육성책으로 정상화된 것은 1961년 5·16이후였다.
수원문화원은 1957년 10월28일 개원됐다. 초대부터 4대까지의 원장은 당시 수원시장이었던 김한복(金漢福·1957.10.8~1960.10.30), 2대 윤긍렬(尹兢烈·1960.12.27~1961.5.24), 3대 이백일(李白日·1961.5.25~1963.2.1), 4대 허철(許哲·1963.2.12~1964.10.20) 씨였다. 시장이 겸직했던 문화원장 시대를 거쳐 5대 (김승제·金承濟)부터 민간인이 원장으로 선출됐다. 김승제씨는 7대까지 연임(1964.10.21~1973.9.10)했고 안익승(安益承·1973.9.11~1979.9.25)씨가 8·9대 원장으로 봉사했다.
10대 홍사일(洪思日·1979.9.26~1983.9.14), 11대 이수영(李秀榮·1983.9.15~1987.9.7), 12·13대 심재덕(沈載德·1987.9.8~1995.6.29), 14대 김종기(金鍾基·1995.9.26~)에 이르는 동안 수원문화원은 명실상부하게 수원지역 문화발전에 이바지했다.
1960년대엔 수원지역 청년·학생들의 모임인 장원회, 난파합창단, 문학동인회 서호림·에뜨랑제 등이 문화원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1980년대부터 ‘수원시사’ 편찬, 월간 ‘수원사랑’ 발간, 서호 및 수원천 살리기, 수원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발족, 한 여름밤의 음악축제, 수원사랑 백일장 등 많은 사업을 펼쳤다. 그런데 2개여월 전부터 원장 권한에 이상이 생겼다. 지난 7월29일 총회를 열어 전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장으로 선출된 김종기 원장의 후임으로 유병헌(劉秉憲)씨를 15대 원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법원등기서류에 원장 임기가 올 12월 18일까지로 돼있어 유병헌씨가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기서류상의 원장과 행정적인 원장, 그러니까 지금 수원문화원은 원장이 2명인 셈이다. 문화원 내외에서도 묵시하고 있는 모양인데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 지 걱정스럽다. 만일 임기만료일 이전에 불상사라도 생기면 ‘좋은 일은 내 덕분, 나쁜 일은 네 탓’이라고 서로 원장 책임을 전가할텐데 그런 민망한 일이 생긴다면 뒷모습, 앞모습이 아름답지도 당당하지도 못하다. 문화적인 조치가 속히 있어야겠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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