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도덕성의 신뢰 추락으로 원만한 국정운영이 어렵게 됐다’고 밝힌 현실 인식은 적절하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잇단 측근의 권력형 비리는 더 이상 이 정권의 청렴성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신중을 요한다. 국민에 대한 재신임은 중간평가와는 다르다. 중간평가는 평가 내용을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주요 참고로 하면 되지만 재신임은 과반수의 불신이 나올 경우엔 하야해야 한다. 재신임을 묻는 방법은 내년 총선을 참작하기 보다는 국민투표로 하는 것이 옳다. 재임 중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투표의 전례가 없어 매우 난해하지만 그래도 묻겠다면 헌법이 정한 국민투표로 묻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재신임을 지금 당장 묻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론화 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재신임을 묻는 사례가 법에 없으므로 순전히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결정될 일이지 누가 어떻게 공론으로 정할 성격이 못되는 것이다. 만약 이 정권이 처한 난국을 면책키 위한 제스처라면 심히 황당하다. 그러나 어떻든 일단 대통령이 밝힌 재신임 문제를 그렇다고 흐지부지 덮어두기도 어려워 앞으로의 일이 난감하게 됐다.
대통령은 먼저 취임 이후의 실정이 누구의 탓이 아닌 바로 자신의 탓임을 깊이 뉘우쳐야 한다. 국정을 잘못 챙기고 측근을 잘못 관리한 책임은 언론환경도 아니고 지역민심도 아닌 바로 대통령 자신인 것이다. 그래서 실패한 전철을 교훈 삼아 아직도 임기가 많이 남았으므로 앞으로 더 잘 해주길 바라는 것이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불쑥 내미는 재신임 투표가 아니다.
가뜩이나 민생경제가 어려운 터에 재신임 문제로 정국이 불안해지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또 대통령의 재임 중 재신임을 묻는 일이 전례로 남는 것은 장차 헌정의 안정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충심으로 당부하는 것은 재신임을 묻고싶을 만큼 결연한 국정쇄신의 의지로 해석하고자 하므로 가급적이면 철회하기 바란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재신임을 꼭 묻겠다면 지체없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할 것이다. 공론화란 이름으로 국론을 분열하고 국력을 소진하는 것은 매우 좋지않다.
재신임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하는 건 이 또한 발설한 대통령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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