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8월30일 저녁 8시쯤, 한 청년이 “나 이강석인데…”하고 경주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회의장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화들짝 놀란 서장은 청년이 있다는 다방으로 달려갔다.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 황송해하는 서장의 인사에 청년은 “아버지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다”고 대꾸했다. 자유당 정권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고 있을 때 였다. 청년은 3일동안 경주에 머물렀다. 경주는 물론 영천·안동·봉화 등지를 돌며 경찰서장과 군수로부터 향응과 칙사 대접을 받았고 40만환이나 되는 거액도 받았다.
9월1일 밤, 청년은 경북 도지사의 관저에 여장을 풀었다. 이날 청년은 가짜 이강석인 것으로 밝혀져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북 도지사의 아들이 이강석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사실을 청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용돈이 궁해서 꾸민 연극인데 그렇게 굽신거리고 쩔쩔맬 줄 몰랐다”고 둘러댔지만 9월18일 구속돼 징역 10개월을 살아야 했다. 진짜 이강석은 3년 뒤 4·19혁명 직후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까지 권총으로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고, 가짜 이강석도 3년 뒤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죽음까지도 진짜를 따라하는 기이한 인연을 맺었다.
가짜 이강석 사건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이야기지만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노씨 성을 가진 39세의 여인이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대통령 친형 노건평씨 딸)’로 행세하고 다니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녀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부터 부쩍 광주 노씨 해음공파 종친회에 자주 들러 노 대통령의 친조카 노릇을 했다. 고졸, 연예인 의상 코디네이터가 경력의 전부인 그녀가 한미문화예술교류재단 주최로 지난 6월26일 워싱턴 미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행사준비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측 대표로 참석, 연설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단측이 현지 호텔비와 항공비 등 2천800여만원을 대신 지급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짜 노릇한 사람보다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더 더욱 한심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