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의 아침/亂世와 英雄

도도히 흐르는 역사(歷史)의 수레바퀴는 무상한 세월속에서 희비의 사연과 숱한 애환만을 남기고 참여 정부 원년인 2003년의 한해도 저물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 속에서 푸르기만했던 은행나무 가로수 잎은 노랗게 물들고 삭풍에 한잎 두잎 떨어져 아무렇게나 보도에 나뒹굴며 뭇사람들 발에 밟히는 겨울의 문턱 입동(立冬)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해마다 오고가는 계절의 마디인 입동이건만 올해의 입동은 왜 이다지도 차갑고 공허하고 싸늘하기만 할까.

이는 사람마다 각기 주워진 사연과 여건 속에서 고민하는 감정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직장을 잃은 가장의 고민, 신용불량자가 되고만 서민의 감정, 직장을 찾지 못한 채 실업에 헤매는 젊은이들의 분노, 벼랑끝에서 부도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중소상인의 처참함, 높은 임금과 데모, 구인난 등 3중고에 시달리다 공장을 낯선 외국으로 옮겨 가야만 하는 중소기업인(中小企業人)의 애달픔, 지하철역을 전전해야만 하는 노숙자들의 처참함, 갈곳없이 내몰리는 외국 근로자들의 방황, 한·칠레 무역협정으로 설 땅을 잃은 농민들의 외침, 거리로 뛰쳐나와 화염병을 던져야만 하는 노사의 갈등, 불가사리처럼 돈을 마구 먹다가 교도소의 문턱을 전전하는 정치인의 군상들, 측근비리, 이라크파병, 재신임 등의 해법을 찾는 노무현 대통령의 무거운 구상과 현명한 결단…. 이 모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뒷편에 도사린 아우성이자 애환이며 메아리다. 이 모두가 한데 엉켜 우리의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적자생존을 외치고 있다.

30대 주부가 슈퍼에서 단돈 1만원짜리 쌀 1포대를 훔쳤다. 이를 생계성 범죄라고 한다. 장발장이 배가 고파 빵가게에서 빵한쪽을 훔쳐 먹다가 교도소에 갔다. 교도소에서 출소후 또다시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치다가 경찰에 붙들려 갔는데 피해자 격으로 경찰에 나온 성당의 신부는 이 촛대는 내가 장발장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자(聖者)의 도량이 천당(天堂)과 지옥(地獄)을 드나드는 천사(天使)의 복음(福音)처럼 새삼 떠오른다.

그러나 이와같은 세상 뒷편의 신음과 메아리를 보며 세상 어느 한 구석도 성한 곳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우려한다. 그 원인이 우리나라엔 정치인은 많지만 정치가(政治家)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어느 사람은 국운(國運)의 비색 운명(運命) 같은 것 아니냐고도 한다.

또 어느 사람은 참여정부 원년의 치적 같은 것 아니냐고 혹평도 한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영웅이 난세를 다스린다고 했던가. 전자든 후자든 떠나 2004년의 떠오르는 태양(太陽)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希望)의 비전을 안겨다 주는 뜨거운 빛으로 다가와주길 바랄 수 밖에 없다.

가난이 죄(罪)인가

참여정부는 처음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재분배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사회상은 중산층은 무너지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의 갈등과 위화감의 골이 깊어가고 이에 대한 치유의 길마저 잃고 있는듯 하다. 특히 상대적 빈곤층의 증가는 우려할만 하다. 참으로 암담하다. 가난은 자랑거리는 못되지만 죄는 아니라고 했다.

가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삶의 낙오속에서 헤매며 신음하다 속절없이 ‘엄마, 나 죽기 싫어요’ 하는 죄없는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아파트 고층에서 몸을 던져야만 하는 처참한 외침을 우리는 다같이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외침은 그 한 여인, 한 사람만의 절규로 받아 들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안순록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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