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詩

“쓸쓸한 뫼앞에 후젓이 앉으면 / 마음은 갈앉은 앙금줄같이 /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 넋이는 향맑은 구슬손 같이 /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 김영랑 시인이 15세 때 첫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쓴 시 ‘쓸쓸한 뫼앞에’ 전문이다.

한하운 시인의 사랑시 ‘려가(驪歌)’도 절절하다. “님 오시면 피어라 진달래꽃 / 한식에 소복이 통곡할 때에 // (중략) // 봄마다 피는 / 옛날의 진달래꽃은 // 무너질 수 없는 / 님이 쳐다보는 얼굴(하략)”

나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이 사랑한 R은 시인의 인생만큼이나 기구했다. 자신의 병력을 알고 자살하려는 한하운을 붙잡아 준 R은 모든 것을 바쳐 시인의 삶을 이어가게 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이 땅의 역사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8·15 해방이후 한하운의 동생과 R은 형무소에 수감되고 한하운만 단신 월남, 생이별을 하였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 한낮이 기울며는 / 밤이 오듯이 / 우리의 사랑도 / 저물었네 /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가곡으로도 잘 알려진 ‘이별의 노래’의 주인공은 박목월 시인 자신이었다. 박목월과 서울의 명문여대생 H의 사랑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답게 갖가지 주해를 낳으며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옛 시조에도 사랑은 애틋하다. “꿈에나 임을 보려 잠 이룰까 누웠더니 / 새벽 달 지새도록 자규성(子規聲)을 어이하리 / 두어라, 단장춘심(斷腸春心)은 너나 내나 다르랴” 인적 사항과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청구영언’에 작품이 실려 전하는 호석균의 시조다.

“임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실솔이 넋이 되어 / 추야장 깊은 밤에 임의 방에 들었다가 /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조선 고종 때의 박효관이 지은 시조로 ‘실솔이’는 귀뚜라미다.

가을이 점점 깊어 가고 있다. 깊어진 가을 속에 빠져죽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기러기도 울어옌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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