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 설성산성을 찾은 정영호 단국대 석주선박물관장은 한 줄에 10여 점씩, 3줄로 열을 이룬 채발굴현장에 공개된 토기 30여 점을 바라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이거, 백제토기 전시장이구만, 토기 전시장이야”.
지난 수십 년을 발굴 현장에서 보낸 정 관장에게도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소장 박경식)가 올해 시도한 제3차 설성산성 발굴성과가 놀라웠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 교수는 최영희 전 국사편찬위원장,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최몽룡 서울대 교수, 최인선 순천대 교수 등이 동석한 이날 현장설명회에서 “당장 국가사적 지정 신청을 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출토 유물로 보아 백제가 쌓은 성곽임이 확실한 이상, 더구나 3차에 걸친 그동안의 조사에서 막대하게 확인된 백제토기 등을 고려할 때, 설성산성이 국가사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차 발굴에서도 그러했지만, 이번 3차 발굴 또한 설성산성은 산성으로는 기록적인 토기 출토량을 보이고 있다.
설성산성과 같은 산성은 평야 지대나 구릉지 같은데서 확인되곤 하는 다른 고대 유적과는 달리 토기 등의 유물 출토량이 많지 않는 것이 대체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산성이 평시에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전쟁 등과 같은 비상시에 집중적으로 활용되는 군사요새이기 때문. 하지만 설성산성은 이러한 종래 산성에 대한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출토유물 중 특히 한성시대 백제토기의 경우, 2-3차 조사에서 원형, 혹은 그에 가까운 완형으로 출토된 것만 70점을 상회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백제토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설성산성 출토 토기는 교과서적인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설성산성에서 확인된 이같은 성과는 ‘구덩이’ 유적에서 기인한 것이다. 성곽 안쪽에서는 현재까지 모두 28개에 달하는 구덩이가 확인되었는데 이중 6곳이 토기 저장용, 혹은 토기 폐기용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구덩이 4곳에서는 토기들이 고스란히, 더욱이 그득하게 확인됐다.
이들 토기는 시기적으로 보아 서울 풍납토성을 기준으로 할 때는 중상위층에서 출토되는 그것들과 거의 같은 계통에 속하고 있다. 또 서울 몽촌토성 출토품과 비교할 때는 거의 같은 시기이거나 약간 늦은 시기에 속하고 있다.
조사단이 이번 설성산성 발굴성과에서 주목할 것은 설성산성의 축조시기. 조사단은 출토 유물이나 성벽 절개 조사 성과 등을 토대로 설성산성은 4세기에서 5세기로 넘어가는 단계에 성곽이 완성되었다는 견해를 제출했다.이는 백제는 한성시대에는 석성을 만들지 않았다는 공식과도 같던 한국 고고학계의 통설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설성산성을 학계가 주목하는 까닭은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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