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컬럼/설득력이 부족하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게티즈버그 전투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당대의 명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인이 기억하는 말은 두 시간에 걸친 에버렛의 연설이 아니라 링컨이 한 짧은 연설이다.

널리 회자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구절이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사투리를 고민하던 링컨은 이처럼 핵심을 찌르는 말로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1940년 프랑스가 함락되고 영국만이 독일에 대항하던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영국 수상 처칠의 연설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켰다. 처칠은 “우리는 해안에서 적들과 싸울 것이며, 도심과 구릉에서 적들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루스벨트는 처칠의 이 연설을 듣고 영국에 군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처칠은 혀가 짧고 말을 더듬었지만 자신감으로 여론을 이끌었다.

1958년 미국의 재정적자는 10억달러에 이르렀는데도 국민은 위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달러짜리 지폐를 10억달러만큼 늘어놓으면 얼마나 되는지 물어 봤다. 일주일 뒤 그는 연설했다. “1달러짜리 지폐를 죽 늘어놓아 10억달러를 만들면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하고도 남습니다” 통계수치에 이야기를 담은 명연설이다.

명연설가들은 운율과 대조법 구사에 명수였다. 케네디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어떤 대가(price)라도 치르고(pay), 어떤 부담(burden)이라도 짊어질(bear) 것 입니다”라고 두운(頭韻·Alliteration)을 맞춰 호소력을 높였다.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초반 카터 대통령은 공화당의 레이건을 앞서고 있었다. 텔레비전 토론이 시작되자 레이건은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4년 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느끼십니까. 그러면 카터 대통령에게 투표 하십시오.”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전투에 나설 때면 출정에 앞서 병사들을 모아 놓고 수십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병사들은 그럴 때 마다 나폴레옹이 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작은 키의 나폴레옹이 창조하는 카리스마의 비결은 침묵이었다.

이제 거미형 최고경영자(CEO)의 시대는 지나고 사자형 CEO의 시대가 왔다. 오늘날 시장이 원하는 것은 현장을 휘젓고 다니는 감독자형 경영자가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강한 리더다.

달변가인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 보여준 많은 ‘말’ 가운데는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말이 많았다. 대통령 후보자 시절과 현직 대통령은 엄연히 다르다. 달변과 웅변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레이건처럼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하고, 링컨처럼 비록 짧지만 기억에 남는 말을 해야 한다. 나폴레옹처럼 때로는 침묵이 권위를 창조하기도 한다.

물론 알고 있겠으나 말로 세상을 바꾼 리더들의 남다른 화법을 구구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을 아끼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야당이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리더십의 핵심은 설득력이다. 모든 국민이 야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야당보다 먼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요즘 노 대통령의 언행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과거처럼 박력도 없어 보인다. 뚝심이 고집으로 보여 안타깝다. 특검법이나 재의결토록 하여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리는 측근들은 이제 그만 물리치고 스스로 힘 좀 내기 바란다. 보기에 딱해서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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