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미국과 중국에서 일고 있는 존 F 케네디와 마오쩌둥(모택동) 추모 열풍이 한국에도 상륙한 것은 우리가 ‘리더십 부재시대’를 살고 있는 탓이다. 이들은 둘 다 카리스마(쇋쇑쇉쇞쇒쇟쇙쇉)를 갖추고 있으며 대중주의를 신봉했고 시대변화를 추구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케네디는 냉전의 시대 속에 갇혀 고민하던 미국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고, 마오쩌둥은 봉건주의 중국을 사회주의로 바꿨다. 시대를 변화시키고 국민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 박 전대통령은 가난을 벗고 한국을 근대화시키는 데 나름의 성과를 이뤘다. 국민적 찬사도 받았다. 그러나 박 전대통령은 한편으론 독재자로 기록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면에서 대중과 함께 30여년을 투쟁하다 정권 획득에 성공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인에게 ‘피플 파워’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문민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양 김씨는 측근들로 인해 청렴성과 도덕성에서 큰 상처를 입었고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사가(史家)들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진정한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를 갖춘 사람은 아직 없다고 진단한다. 이승만 전대통령은 느낌과 감정이 앞서고 행동하기에 바빴던 ‘카리스마적 권위주의자’였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폭력적인 정권탈취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지만 보스기질과 능숙한 심리전략을 지녔던 ‘대세주도형 인물’이었으며, 노태우 전대통령은 중간평가 파기, 3당합당 등에서 나타나듯 분위기를 잘 이용한 ‘대세편승형’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에게 진정한 카리스마는 없었다.

카리스마란 원래 그리스어로 ‘은혜’ ‘무상의 선물’이라는 뜻의 그리스도 용어였다. 다시 거둬들이지 않는 하느님의 선물, 또는 예수가 인간에게 베푸는 은총을 의미했다.

카리스마가 오늘날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의해서였다. 그는 원 뜻을 확대하여 사회과학의 개념으로 사용,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초자연적·초인간적 재능이나 힘을 지칭했다.

케네디나 마오쩌둥처럼 한국에는 카리스마를 갖춘 정치인은 없는가. 야당 지도자는 국정 책임자로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마침 신경정신과 김종석 박사가 노무현 대통령 성격을 ‘외향적 사고 감각형’이라고 분석했다. “현실 상황에 판단을 잘 하고 적응 능력이 뛰어난 반면 자극에 예민해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 박사는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국익을 위해 융통성 있고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은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원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을 절망케 하는 한나라당의 기상천외한 불법 대선자금 수금은 물론 자신의 최측근, 열린우리당, 다른 야당들의 검은 돈 수수행위를 모두 찾아내 박살을 내야 한다. 고구마넝쿨같이 줄줄이 딸려 나올 과거사를 밝혀내봤자 경제만 어려워진다는 해괴한 논리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가당치 않다.

측근들 내치는 고통을, 앓던 이 빼버리는 쾌감으로 여기고 이번에 완전히 끝내야 한다. 불법 정치자금은 한 푼도 안받았다고 지껄이던 그 가증스러운 얼굴 뒤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그야말로 배추처럼 수백억원씩 차떼기로 건네 받은 정치판을 확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천신만고 견뎌가며 가꾼 배추를 그야말로 밭떼기로 백주에 눈 뜨고 강탈 당한 배추밭 주인들의 오장육부는 얼마나 썩었겠는가. 도둑질 한 자 처벌하는 데 만에 하나라도 내 편 , 네 편 따지면 천벌 받는다. 지금 검찰에 특검보다 강력한 전권을 실어줘야 한다. 그 것이 바로 정치력이다. 강력한 리더십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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