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이 세차다.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철이지만 자연의 섭리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라던가, 그래도 옛날같은 겨울이 아니다.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내리기가 예사였던 그런 겨울은 아니다. 강물이 몇겹씩 두껍게 얼어붙는 그런 겨울 또한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겨울은 겨울이다. 삼라만상이 얼어붙었다. 녹음을 자랑하던 산천 거목, 그리고 거리의 가로수가 앙상하다. 비단결 같았던 들녘의 잡초도 시들어 대지가 움츠러 들었다.
태양은 여전히 빛나 온누리를 밝히지만 햇살은 휴화산처럼 잠자고, 밤하늘의 달과 별이 유난히 차가워 보이는 겨울이다. 눈덮인 산야가 어떻게 보면 더 정경스럽고, 겨울바다가 더 다감해 보이는 그런 겨울이기도 하다. 어딘가 훌쩍 겨울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막상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이 겨울을 그저 생활 주변에서 음미하며 보낸다.
그렇다. 겨울을 마지못해 보내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여 감상하는 게 지혜로운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모진 북녘바람도, 출근길이 걱정스런 눈 사태도, 시냇물이 얼어 흐름을 멈추는 강추위도 두렵게 여길 이유가 없다. 이 또한 대자연 속에 자신의 생활을 확인시켜주는 섭리라고 여기면 되는 것이다. 그 속에 자신이 있으므로 하여 생명력의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있었으므로 겨울이 있고 겨울이 있으면 또 봄·여름이 있다. 인간사의 오르막 내리막 길 같은 대자연의 윤회에 제대로 적응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동지다. 한해 가운데 가장 밤이 긴 오늘을 넘기면 낮이 점점 길어진다. 올 동지는 음력 동짓달 그믐날로 늙은 동지 중에서도 가장 늙은 동짓날이다. 찹쌀로 빚은 새알에 팥물로 쑨 동지죽은 겨울철의 보양식이다. 동지죽을 쑤는 것은 액운을 몰아낸다고 믿는 조상 전례의 민속이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