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요즘 방영중인 SBS TV드라마 ‘왕의 여자’에 등장하는 ‘김개똥’은 조선왕 14대 선조(1552~1608)의 상궁이었는데 선조 말 의도적으로 세자 광해군에게 가까이 접근하여 총애를 받았다. 선조가 승하한 후 김개똥은 궁중의 일을 거의 장악하였 뿐 아니라 인사 행정에 까지 관여하여 조정을 어지럽히기까지 하였다. 부정한 방법으로 벼슬하고자 하는 자들은 김개똥을 통하여 뇌물을 바쳤는데, 그 돈이 매일 수천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광해군은 그 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여 상궁들은 광해군을 ‘부엉이 왕’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상궁 김개똥은 예조판서 이이첨과 함께 선조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온갖 행악을 저질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 타버린 궁궐을 창건, 개수하여 왕실의 위엄을 세우고자 했으나 필요한 경비가 많이 부족하였다. 김개똥은 이를 눈치채고 경비조달의 한 방법으로 뇌물 받는 일을 생각해냈다. 그 무렵 한효순은 산삼을 바치고 정승의 자리에 올랐고, 이충은 잡채를 바쳐 호조판서로 승진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산삼 재상, 잡채 판서’라고 하며 비아냥거렸다. 부족한 공사비를 마련한다는 명목을 내세운 뇌물수수도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천민 출신인 권충남은 뇌물을 바치고 함안 군수가 되었고, 남의 집 종이었던 김충보는 장기 군수가 되었으며, 변충길은 관의 노비로서 횡성 현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개똥의 횡포는 매우 심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이첨과 쌍벽을 이루어 부정과 매관매직을 일삼던 상궁 김개똥 주위의 궁녀들을 ‘오행당상(五行堂上)’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김개똥이 큰 농토와 많은 재물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중간에서 뇌물의 일부를 착실히 가로 챈 덕분이었다. 하지만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던 상궁 김개똥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은 윤선도와 이희 몇 사람 뿐 이었다. 1623년(광해 15) 3월 13일 김개똥은 정업원(淨業院)에서 불공을 드리던 중 인조반정 소식을 듣고 민가에 숨어 있다가 병사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부정을 겁내지 않는 측근과 그 측근에 의해 눈·귀가 가려진 주군은 이렇게 멸망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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