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거나 가슴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공무원 채용시험의 여성 응시자가 탈락했다. 응시자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기각됐다. 외신이 전한 중국 한 지방도시의 이같은 공무원 채용기준은 분명히 잘못된 성차별이다.
이런가 하면 광저우(廣州)시의 어느 대학 여강사는 자신의 누드를 인터넷에 내보내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비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그녀는 “내 육체의 진솔한 원초적 표현을 내가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데 뭐가 문제냐”며 반박했다고 한다.
누드의 원래 개념은 그 대상으로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한데도 누드의 대상은 거의가 여성이다. 자고로 화가의 누드에서 남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르누아르(1841~1919)의 많은 나부(裸婦) 작품 가운데 ‘햇빛속의 나부’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나부의 그림들이 뱃살이 도톰한 약간은 비만형이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남성미를 과시하는 육체미 대회가 있다. 이런데도 현대 미술에서조차 누드의 대상으로 남성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 성차이다.
예컨대 임신부가 술을 먹으면 안되는 것 역시 성차이다. 음주는 태아의 뇌세포 손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총회에서는 칵테일을 두잔만 먹어도 태아가 영향을 받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것이 성차별이 아닌 성차이인 것은 남성은 임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사노동의 여성 전담 같은 건 성차별이다. 가사노동 분담은 남성도 능히 가능하기 때문인 것이다.
얼마전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국회의원 선거에 ‘여성전용구’란 것을 만들려다가 그만둔 해프닝이 있었다. 평등의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성차별과 성차이는 이렇게 다르다. 차별과 차이를 혼돈하는 잘못된 관념이 여권 신장을 되레 저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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