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중국 당조(唐朝)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중국 서쪽 오지 촉(蜀·지금의 쓰촨성 일대) 사람이다. 어려서 시와 검법을 배운 그는 약관의 나이에 세상으로 나온다.

고향을 떠나는 각오를 담은 시 ‘광산을 떠나며(別匡山)’에서 이백은 “책과 칼로 태평성대에 몸 바치리”라고 갈파했다. 수도 장안으로 들어가 관직을 구하지만 오히려 가진 재물만 날린 심정을 ‘행로난(行路難)’에서 “갈 길 어렵구나, 돌아가자”며 비통해 한다.

이백의 삶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관직을 얻은 후 펼쳐진 삶이다. 경세의 뜻을 펼치려던 웅지는 고작 황음에 빠진 현종과 양귀비에게 1~2년동안 시를 지어 바치는 궁정시인의 현실로 귀결된다. 맹호연 원단구 두보 등과 사귀며 외로움을 달랜다.

이백은 천하를 다스려 이름을 얻기 바랐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백은 1천100편에 이르는 시를 남겨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시 하나를 두고 퇴고를 거듭했다고 하지만 이백은 입에서 나오는 말로 즉흥시를 썼다고 전한다.

술이 거나해진 이백이 춤을 추다 말고 벗 원단구에게 말한다. “단구 선생, 붓을 잡고 쓰시오. 시가 완성되었소!” 중국인 학자 안치(安旗)가 1993년 발표한 소설 형식의 전기문학 ‘이백’에 나오는 장면이다. 술 마시고 춤을 추다 문득 시를 쏟아내는 이백의 입, 그 뒤를 따르며 한 소절씩 받아 적는 원단구의 손놀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백의 삶 전체를 적시고 있는 술은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지 못한 분을 쏟아내는 출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1천400여년이 지난 지금 이백은 자신이 부러워했던 모든 경세가들의 잊혀진 이름 위에 홀로 기억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백은 세상 가운데 서려했으나 세상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오히려 시인으로 영생을 얻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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