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山河…강은 말없이 흐른다
이념에 막혀 ‘갈 수 없는 땅’서 恨·슬픔안고 흘러와
민들레벌판·암정교·군인들 … 민족의 아픔 보듬고
한반도 평화 전해줄 ‘희망의 강’으로 부활 손꼽아…
허리 잘린 국토의 최전선. 철원 중부전선의 백골부대 멸공 오피(OP)에서 철조망 휘어감긴 삼엄한 철책 너머로 북녘의 산야를 바라본다. 다섯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오형제처럼 정겨워 보이는 오성산(五星山·1062m, 일명 저격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갈 수 없는 땅이라서 더욱 애틋한 정감을 불러 일으키는 풍경들. 철조망이 아니라면, 멧부리마다 올라앉은 초소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평화로운 정경일까.
남과 북이 살벌하게 대치한 분단 현장은 철책선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고 긴장과 정적이 감돈다. 후방엔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더 이상 발을 내딛을 수 없는 DMZ(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엔 언제나 봄이 올 지 알 수가 없다. 이 곳에선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듯 싶다.
너른 평원 위로 짙푸른 물줄기 하나가 남쪽으로 도도히 흐른다. 철책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처럼, 금강산 아래 백자산 북쪽 기슭서 흘러내린 한탄강이 분단의 벽을 넘고 있다. 허리가 잘리면서 남과 북을 달리던 경원가도(京元街道)와 경원선은 끊긴 지 오래지만, 한탄강만은 오늘도 민족의 아픔과 한을 안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에 강물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을 한탄강. 오죽했으면 이곳 사람들은 ‘한이 서린 탄식의 강’이란 의미로 한탄강(恨歎江)이라 불렀을까. 그러나 이제 그 강엔 이데올로기란 없다. 강물이 남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인양, 그 줄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임을 상기시켜 주듯 평화를 염원하며 쉼없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철책선 너머 한탄강이 몸을 싣고 흐르는 평원은 이름도 아름다운 ‘민들레 벌판’이다. 그러나 민들레 벌판엔 민들레가 피지않는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마구 흩뿌려지 듯 지뢰가 뿌려진 지뢰밭이다.
민들레 벌판은 철원, 김화, 평강 철의 삼각지의 세조각 땅들이 조금씩 만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에 적을 두고 있는 넓은 들을 일컫는다. 한 가운데로 DMZ가 지나고 지뢰가 널려있어 갈 수 없는 이곳은 전쟁 전에 ‘먼들’로 불렸다.
철원은 화산이 폭발해 용암대지 위에 형성된 지역으로 땅의 어디를 파도 크고 작은 ‘곰보돌’이 수없이 나왔다. 철원 사람들은 이 곰보돌(현무암)을 ‘멍돌’로 불렀고, 그 돌 들판을 ‘멍돌 뜰’이라 명명했다. 마을에서 떨어져 있던 먼 들판은 언제부턴가 ‘먼들’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멘들’로도 발음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먼들’은 치열한 전장의 한복판이 됐으며, 벌판의 영문이름이 미군 작전지도에 ‘Mendle’로 등장했다. 이 벌판을 ‘Mendle’이라 부르던 사람들도 떠나고 ‘먼들’의 옛 주인도 사라진 오늘날, 이곳엔 ‘민들레’란 이름만 남게 되었다. 민들레가 피지 않는 먼들은 그렇게 민들레 벌판이 되었고, 결코 이름처럼 낭만적이지는 않다.
그 민들레 벌판을 깊은 침묵으로 내려온 한탄강은 멸공OP를 휘감고 돌아 남방한계선 바로 밑에서 정자연으로 흘러든다. 정연 8경중 하나였던 정자연 옆 정연교에선 한탄강 위에 놓여진 끊어진 금강산 철교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강물 위에 녹슨 철교가 놓여있다. 철원과 금강산을 연결하던 금강산 전철이 내달렸던 다리 교각엔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키로’라고 더 이상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새겨져 있다. 교각은 아직 멀쩡하지만 레일은 이미 뜯겨 나갔고 침목도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아슬아슬 하다.
그 옆쪽으론 민통선 최북단에 위치한 전선휴게소와 백골전선교회가 자리해 있다. 김화읍 도창리 81-6에 소재한 전선휴게소에선 김영범, 김순희 부부가 12년째 매운탕 집을 운영하고 있다. 철원에서 나고 자란 부부는 아래 마을 정연리에 살고 있는데 겨울엔 오후 6시까지, 여름엔 저녁 8시까지 해가 있을 동안 장사를 한다. 민간인 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전선휴게소도 이제는 제법 알려져 서울, 경기도 등지에서 매운탕을 먹으러 오는 단골손님까지 생겼다.
김순희씨는 “민통선 밖에 살다가 70년대초 정연리에 입주마을이 생기면서 이곳으로 와 정착하게 됐다”면서 “지척에 DMZ가 있고 북한군이 총을 겨누고 있지만 불안감은 없다. 매운탕 집을 운영하며 남들처럼 자식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은 출입이 자유롭지 않지만 군 초소에서 전선휴게소에 매운탕 먹으로 간다면 무사통과다. 특별한 출입증이 있어야 통과가 됐던 민간인통제 마을도 이제는 점점 축소가 되고 왕래가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러나 곳곳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어 그 안에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다른 활동은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매점 바로 옆에는 인근의 군인과 군인가족들이 다니는 자그마한 백골전선교회가 눈길을 끈다.
이곳 김화읍 도창리와 동송읍 정연리 등은 백골부대 정훈공보참모의 안내하에 취재가 가능했다.
취재진은 금강산 철교 등지를 둘러본 후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남대천 줄기의 암정교를 찾았다. 평강과 김화를 연결해주던 이 다리에도 6·25전쟁의 상흔이 너무도 진하게 남아있다. 포탄세례를 받은 암정교는 철골이 다 드러나 앙상한 모습에 탄흔으로 누더기가 되어있다.
남대천에도 금강산 가는 철교가 놓여있지만 철근은 없어진 지 오래고 돌 받침대만 남아 있다. 저 멀리 나무로 만든 출렁다리는 수십년 비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며 강 위에서 종이장처럼 나풀거리고 있다. 군인들이 보초를 서기 위해 강을 건널 때 만들어 놓았던 찢겨진 출렁다리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취재중 노란색 차 한대가 나타났다. 이름하여 ‘황금마차’. 군인매점인 PX가 따로없는 민통선내 소규모 군부대를 위해 ‘움직이는 PX’가 등장한 것이다. 이동매점이 나타나자 눈에 보이지않던 군인들이 어디서 우르르 몰려와 소시지며 쥐포, 단팥빵 등을 한아름 사들고 갔다. 하루에 한차례씩 온다는 황금마차에는 앙고라 귀마개, 군화끈, 스키장갑부터 과자, 빵 등 군것질거리가 실려있고, 그 옛날 시골동네에 아이스케키 장사가 왔을 때처럼 군인들이 즐거워라 몰려 들었다.
분단이 만들어낸 진풍경, 세계 어디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냥 재밌게만 지켜볼 일은 아니었다.
이곳 한탄강변에선 좀처럼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업무수행중인 총든 군인의 모습이 고작이고, 곳곳에 초소와 지뢰 표지가 아직도 우리가 분단국임을 실감케 한다.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온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한탄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른다. 분단국가의 한과 탄식을 안고 흐르는 한탄강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한탄강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줄 희망의 강으로 돌아오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글·사진/ 이연섭 문화부장 yslee@kgib.co.kr
김추윤 신흥대학 교수·지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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