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꽃잎으로 진 정진영君을 애도하며…
열흘전 아버님을 여읜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찾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헤매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곤 한다. 아버지는 봄볕이 따스해지면 가시고 싶다던 발원대로, 남녘에 봄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던 사월 초엿새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언 땅을 파야 할 인부의 수고와 서러움에 더욱 떨릴 상주들의 추위까지 마음쓰시던 아버지는 영별의 시간으로 마지막 이틀을 남겨주셨다. 이미 아버지는 의학적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지만, 딸의 마음 깊이 겹겹이 쌓아둔 이야기를 들으시며 때론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삶의 끝자락을 놓으시던 임종의 순간에, 아버지의 영혼은 솜털처럼 부드럽게 내 마음을 감싸주고 가셨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와서야, 나는 정진영군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모의 주검은 땅에 묻고, 자식의 주검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미처 피지도 못한 채 쓰러지고 만 어린아들을 차마 앞세울 수 없을 정진영군 부모님의 지통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생명을 나누어 가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 않으리.
과연 이 땅에서, 새순처럼 여린 한 생명을 대체할 그 어떤 가치와 명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진영군의 웃음소리와 몸짓은 그 자체로 눈부신 절대 선이었음을…. 우리 모두 너무 늦게서야 깨달았음을…. 진영군이여, 용서하라.
세상 모든 존재에 특별한 의미가 있듯이, 세상 모든 죽음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음은 자연의 섭리이다. 이제 진영군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죽음의 의미를 헤아리고, 그 뜻을 살리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애도가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중 둘 중 하나는 학교에 대한 누적된 좌절과 스트레스로 죽고 싶을 만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절망하게 되는 자살충동을 경험한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어디에선가 매일 두 명의 청소년이 꽃다운 목숨을 저버리고 있다. 우리들은 이 땅의 십대들을 참담한 죽음으로 내모는 학교와 사회의 가혹한 기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를 숨쉴 수 있는, 생명의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가? 상처받은 아이들도 치유될 수 있는, 사랑의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가?
학교 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사월의 꽃잎으로 떨어진 진영군의 애처로운 죽음 앞에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 아직 우리 지역에는 학교에서 절망한 청소년이 학교 대신 찾아 갈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은 청소년을 위해, 그들이 자신의 개성과 학습능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대안학교가 준비되어 있다면, 더 이상 청소년의 푸르디 푸른 가슴에 피멍이 번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만이라도 청소년의 자살이라는 비극이 사라지게 된다면, 정진영군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정진영군에 대한 추모사업으로, 새로운 학교문화 운동이 추진될 수 있길 염원한다.
/김은미.유스웨이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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