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1896~1948)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근대사회의 여명기에 한 ‘신여성(新女性)’으로 기존의 봉건질서와 인습에 온몸으로 대항하여 불꽃처럼 살다 간 선각자였다. 수원에서 태어난 정월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서 시인·소설가로서 여성의 해방과 권익을 찾아내고자 지금 생각해도 과감하기 그지없는 파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월은 한국의 선각자로 후세에 각인되지 못하고, ‘자유분방한 신여성’으로 잘 못 전해져 왔었다. 그 첫째 이유는 ‘이혼고백서’를 통해 ‘정조라는 것이 왜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것이냐’고 주장하면서 이혼 위자료를 청구한 사실 등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주장을 제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월은 한국 근대문학사 중에서 계몽주의 문학의 중요한 작가이기도 했다. 최초의 여류소설가로서 ‘경희’라는 작품을 발표했고, ‘노라’같은 여성계몽적 시를 써 봉건사회에서 여성의 권익을 외쳤다.
예술가·독립운동가·진보적인 여권운동가로서의 정월의 업적은 1998년 유동준 회장이 창립한 ‘정월 나혜석기념사업회’의 꾸준한 활동으로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1999년 4월27일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나혜석 탄생 103주년 나혜석 바로 알기 제1회 국제심포지엄’은 사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나혜석을 다시 생각한다’ ‘나혜석 미술의 재검토’ ‘나혜석 소설 <경희>의 재검토’ ‘나혜석의 여성해방론의 특색과 사회적 갈등’ ‘나혜석 가족사와 민족의식’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또 최근에는 ‘제7회 나혜석 바로 알기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나혜석 섹슈얼리티 담론 연구’ ‘나혜석의 자유에 관한 여성학적 접근’ ‘나혜석의 회화와 페미니즘’ 등을 분석하여 시대의 선각자 정월 나혜석을 다시금 알려 주었다.
각계의 권위자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월 나혜석기념사업회의 활동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양성평등의 이념으로 남녀가 함께 하는 동반자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시대가 된 것은 정월과 같은 여성 선각자들의 자기 희생과 나혜석기념사업회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혜석기념사업회의 문화사업에 성원을 보내며 관계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협조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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