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경기

■아라한 장풍대작전

“장풍소년 나가신다, 얍!”

전설이 하나 있다.

마루치와 아라치의 경지에 오른 자가 열쇠를 가지고 신성을 띤 제단에 서면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는다는 것. 이 열쇠가 악의 무리에게 들어가는 것을 막는 자들이 있으니 바로 일곱 명의 신선, 즉 칠선(七仙)이다.

옛날 같으면 긴 머리에 수염 기르고 높은 산에서 폭포 맞으며 수행을 쌓을 법한 이들이지만 2004년 세상은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다.

무허가 침술원이나 700 주역풀이 서비스 정도로 생계를 유지할 뿐. 주변에 산이 없으니 편한 대로 건물 옥상에서 수행을 쌓고 TV 진기명기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능을 뽐낼 뿐. 30일 개봉한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제작 좋은 영화)은 코미디와 액션, 로맨스에 화려한 볼거리까지 우리 영화 중에서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종합선물세트형 액션영화다.

도심 속에 고수들이 숨어 산다는 것은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이지만 영화는 캐릭터를 풀어나가는 풍부한 에피소드나 이들이 생활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화면에서 관객들을 압도한다.

테헤란로나 명동, 광화문 같은 도심의 고층빌딩 숲을 누군가가 ‘어색하지 않게’ 날아 다닌다거나 비밀의 제단이 용산에 우직하게 서 있는 전쟁기념관 밑에 숨어 있다는 상상력은 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정말 열심히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맞고만 다니는 초보 경찰 상환(류승범). ‘어리버리’ 임무를 수행하던 어느날 상환은 정체 모를 장풍을 맞고 쓰러져 어디론가 옮겨진다.

바로 도심에 숨어 사는 도인들의 집. 장풍은 의진(윤소이)이 쏜 것. 우진은 이들의 리더격인 자운(안성기)의 딸이다.

“자네는 마루치가 될 재목이야! 장풍도 가르쳐줄게…” 한심하지만 평범한 인생에 느닷없이 나타난 도인들도 당황스러운데 자신들의 제자가 돼달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거절하던 상환. 하지만 얼마 안가 의진의 미모에 반해, 그리고 진짜 정의로운 경찰이 되기위해 ‘도’를 배우기로 한다.

사실, 상환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기가 흐르고 있었던 것. 상환은 의진과 칠선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무공을 익혀간다.

상환이 밥하고 청소하며 차근차근 무예를 쌓아가던 어느날 청계천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속에 갇혀 있던 노인 한 명이 발견된다.

검은 옷의 이 노인은 바로 강력한 힘을 얻어 세상의 악을 다스리려 하던 강경파 ‘흑운’. 콘크리트는 청계천 복개시 칠선들이 흑운을 가뒀던 봉인이다.

이제 흑운은 세상으로 풀려나고 자운을 비롯한 신선들과 상환은 열쇠를 지키기위해 흑운과 맞선다.

영화의 매력을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주는 코미디에서 발견한다면 이는 상환 역의 류승범이 보여주는 확실한 색깔 덕일 듯하다. 영화의 무술감독이자 흑운 역을 맡은 정두홍의 연기도 전작들보다 한층 안정돼 보이고 도인 역의 연기자들도 유쾌한 웃음을 준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후반부 결투 장면이 잘 짜인 액션을 담고 있음에도 다소 늘어진다는 것.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든 류승완 감독의 세 번째 극장용 장편영화다. 12세 관람가.

■효자동 이발사

송강호 맛깔 연기 ‘또 한번의 감동’

좀처럼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송강호의 연기, 1960~70년대 근대사와 시대상의 맛깔스러운 재현,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소시민의 ‘모험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감동…. 올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관객들의 이런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다.

예전과 같은 패턴이지만 송강호의 코미디 연기는 늘 그랬던 것처럼 유쾌해 보이고 그가 보여주는 감동적 아버지의 모습은 어색하지 않게 코미디와 섞여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자리에 다른 배우를 대입시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그다운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변함없는 송강호의 장점이다.

여기에 억척스러운 경상도 아줌마 민자 역을 맡은 문소리의 연기도 부족한 게 없어 보이고 윤주상이나 정규수, 오달수 등 연극 쪽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마을 사람들 캐릭터도 탄탄하다.

영화의 시작은 사사오입 개헌이 있은 지 몇년 뒤인 1960년. 효자동의 왕씨네 만둣집에는 이발사 한모와 면도사 민자가 실랑이중이다.

민자는 한모의 애를 임신한 지 5개월. 한모가 애를 안 낳겠다는 민자를 설득하는 논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이다.

“뱃 속의 애가 다섯 달이 넘으면 낳아야 된다는 얘기야.”

카메라는 이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등으로 시대 배경을 옮겨가며 한모의 뒤를 따라간다.

그저 나라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일 거라며 3·15 부정선거에 한몫했던 한모. 4·19혁명이 있던 날은 아들 낙안이가 태어난 날이다.

여태까지 평범하지 않던 역사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모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은 5.16 쿠데타가 있은 지 얼마 뒤. 대통령 경호실장의 눈에 든 한모는 이제 대통령의 전용 이발사 생활을 시작한다.

소심한 동네 이발사가 군인 출신 대통령을 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 가르마 타기는 얼마나 조심스러우며 면도할 때는 또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는가. 간혹 대통령과 함께 하는 술자리나 가족 동반 식사 자리도 가시방석이다.

전반부에는 캐릭터와 이들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웃음을 전달하던 영화는 아버지 성한모의 아들 사랑이 강조되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감동과 판타지를 섞어 놓는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전환이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다.

감독은 데뷔작에서 자신이 직접 쓴 탄탄한 시나리오를 매끄럽게 화면 위로 풀어내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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