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선생님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왔다. 각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교육청에서는 촌지수수 불법 감시가 내려지는 서글픈 교육현실을 보며 문득 오래전 잊혀져가는 나의 유년시절이 기억난다.

교통과 의료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던 벽지의 산골인지라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배탈이 나도 선생님께서 기거하던 사택문을 두드렸고 동네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도 선생님께 판결을 요청하였다.

‘난 당최 까막눈이라…’ 문자해독이 어려운 동네 어른들은 머나먼 월남땅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날아온 아들의 편지를 품에 안고도 선생님을 찾아와 읽어줄 것을 요청하였고 집안에 어려운일이 생기면 또 상담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하며 선생님을 찾곤 했었다. 가정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올수 없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도시락은 늘 나눔의 대상이었고 여자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떨어진 단추와 옷도 사랑으로 기워주곤 했다.

그때 나이어린 우리는 선생님은 화장실도 가지않고 밥도 안드시며 우리와는 차별화된 특별한 분이라 굳게 믿으며 온몸으로 선생님을 존경했었다. 채변봉투에 변을 담아오는 준비물은 물론 쥐꼬리 세 개씩 잘라오는게 숙제였었고 뒷산에서 겨울 난로용 땔감으로 솔방울을 주워 모으거나 언덕 소나무위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송충이를 잡는 것 또한 수업의 연장이었고 용의검사가 있는 날은 씩씩한 구령과 함께 줄지어 앞개울에 나가 손등에 덕지덕지 붙은 때를 밀어내곤 하던일도 수업의 일부였었다.

보리타작이나 동생을 돌보는 일로 결석이 잦은 아이들의 가정방문을 온 선생님께 새끼줄로 동동 묶은 배추포기와 밭에서 방금 따온 옥수수 꾸러미를 쥐어드리며 어머니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고 피우다남은 담뱃갑을 선생님윗저고리 주머니에 넣으며 쑥스러워 하시던 아버님이셨다.

그시절 벽지 주민들에게 선생님은 하늘이었고 진정한 스승이었다. 이제 스물세번째 맞는 스승의날, 어렵고 고단한 교육현장에서 2세들의 바른 교육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다하며 묵묵히 교단을 지켜가시는 선생님들의 크신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잊혀져가는 추억을 되살려본다./이재선·안양시여성단체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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