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국무총리를 하지 않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지명할 것 같은 김혁규 국회의원 의원이 들으면 기분이 언짢겠지만 본인이 “나는 국무총리를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한 마디 하기를 바란다. 만일 그렇게만 한다면 아마 국무총리를 역임한 것 보다 훨씬 좋은 대접을 받을 게 분명하다.

김 의원은 경남 합천 출신이다. 창녕군 읍·면사무소에서 9급 공무원으로 출발했다. 1971년 1천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가방 장사로 성공했다. 1986년 뉴욕을 방문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현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소개로 만나며 정치에 들어섰다. 당시 뉴욕에서 가발 장사로 성공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쪽, 김 당선자는 YS 쪽으로 서로 경쟁관계가 됐다.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귀국한 김 의원은 YS 사조직에서 일했고, 청와대로 들어가 민정비서관 등을 지냈다. 1993년 관선 경남 도지사에 임명된 이래 내리 네 번(민선 세번) 도지사를 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선 탈당할 것 처럼 움직이다 다시 공천을 받았다. 새 정권이 들어선 직후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났고 결국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 됐다. 이 것이 세상에 알려진 김 의원의 약력이다. 9급 공무원에서 도지사가 됐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국무총리감으로 떠올랐다. 가히 입지전적이다. 장차는 대통령 꿈을 꿀 만도 하다.

김혁규 의원의 총리 기용설에 반대론자만 있는 건 아니다. 찬성론자도 적지 않다. 찬성 이유는 크게 다섯가지다. 첫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가 지켜지는 건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 지켜지기 때문이란다. 김 의원이 작년 12월 경남 지사직까지 그만 두면서 정치적 성장의 요람이었던 한나라당을 떠나 여당으로 옮길 때는 노 대통령과의 사이에 향후 역할에 대한 모종의 약속이 있었을 것이란 게 일반의 추측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지지도 3위였다. 둘째, 철새니, 변절자니 하는 손가락질을 예상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희생까지 감수했다면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인 중 당적을 바꾼 사람은 한 두명이 아니다. 셋째, 지역주의 정치 타파를 위해 김 당선자의 총리 기용은 필요하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지지기반이 약한 지역의 인재를 중히 써 열린우리당을 전국정당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넷째, 정국 안정을 위해 목표를 관철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한 게 십몇년 만이다. 사사건건 야당에 발목 잡히지 않고 본때 있게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저항하면 당신들도 대통령 탄핵안을 다수의 힘으로 관철하지 않았느냐고 무시해버리면 된단다. 다섯째, 총리감으로 인물됨이 적격이라는 점이다. 한나라당 사람으로 세번씩이나 민선지사를 했으며 YS가 애지중지 키웠는데 노 대통령이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크게 쓰려고 하는 걸 보면 사람됨은 검증된 셈이란다.

찬성이유가 이렇게 많은 데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야당에 당한 것 한풀이 하는 오기인사라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 밀어붙일 경우 상생(相生)정치는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준표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민주·자민련은 물론 반대할 것이고 열린우리당도 100% 찬성은 아닌 듯 하다. 총리임명 동의안은 재적의원(299명) 과반인 150명이 찬성해야 통과되는데 야당에서 전원이 반대표를 던질 경우 우리당 의원 중 3명만 이탈해도 총리인준은 부결된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하다. 노 대통령도 탄핵 기각 이후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고 방심하거나 실수하지 말자” “조심 조심해서 잘 꾸려가자”고 당부하지 않았는가. 재수(?)없어 부결될 경우 노 대통령과 우리당은 그렇다치고 김혁규 본인은 무슨 망신인가. 알고 보면 여야합의 하에 국무총리할 사람은 많다.

김혁규 국회의원이 노 대통령에게 “나는 국무총리를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한 마디만 하면 깨끗하게 해결된다. 반대하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김혁규로군” 할 것이다. 김혁규씨의 결단을 보고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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