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수도이전과 국민투표

“나중에 막을 생각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을 일단 통과시켰다” 미국에 체류중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며칠 전 한 말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당시 특별법을 통과시키더라도 나중에 이를 유보할 수 있으니 일단 처리하자는 의견이 당내에 많았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얘기했던 건 3조~5조원 정도 드는 행정수도 이전이었다. 그 정도는 괜찮겠다는 생각에 당론으로 찬성했다”고도 했다. 숫제 말이나 하지 말지!

당시 민주당은 자유투표를 하게 했다. 한나라당이 굳이 찬성당론으로 간 이유를 최 전 대표는 “우리가 다수당이니까 한나라당이 반대해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노 대통령이 제시한 것을 행정수도 이전 개념으로 본 데다 예산 형편이 닿지 않으면 일본처럼 제대로 안 될 것이란 판단을 했다”고 한다.

‘수도(首都)’가 무엇인가.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이다. 더구나 ‘신행정수도(新行政首都)’다. 최 전 대표가 상상했던 건 수도가 과밀하니 행정기구 일부만 옮겨 뉴타운을 만들자는 수준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착각도 보통이 아니다. “나중에 막을 생각이었다”는 말도 당치 않다. 4·15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국회 3분의 2쯤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 발언이다. 다수당의 힘으로 밀어붙일 작정이었다는 속내다. 하지만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자고로 과신은 금물이다.

신행정수도 이전이건 천도건 찬반 여부는 차치하겠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2003년 12월29일 오후 5시13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관용 국회의장은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렸다. “재석 194인 중 찬성 167인, 반대 13인, 기권 14인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소수여당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머물던 행정수도 이전이 법적 추진력을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전체 의원수는 찬성의원(167명)의 28%에 불과한 47명이었다. 그때에도 최 전 대표는 수도권과 영남권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설령 법이 통과돼도 실제로 수도 위치의 선정이나 예산 등에 대해 국회가 언제든지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정 반대하는 사람은 표결 때 아예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마라”고 했다니 신행정수도 이전을 확실히 찬성한 셈이다. 홍사덕 당시 총무도 박근혜 현 대표도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최근 행정수도 이전문제 앞에서 박근혜 대표가 “공당이 한 번 찬성해놓고 입장을 뒤바꾸는 것도 문제”라며 신중론을 견지하는 것은 그래도 인간적이다. 지난 4월에는 충청지역 언론간담회에서 “행정수도 이전은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으므로 아무 걱정하지 마라”고 까지 하였다. 요즘 똑똑한 척 ‘궁예’니 ‘이성계’니 여야가 함부로 떠들고 있지만 불쾌한 말이다. 대통령이 왕이란 말인가.

18일, 노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 국민투표는 국회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지만, 국민투표를 못할 것도 없다. 신행정수도 이전이 돼도 안되도 표결을 엄청 좋아하는 국회 탓이다. 대통령 책임은 없다. 되레 어깨가 가벼워질 수도 있는 기회다. 어차피 ‘천도논란 원죄’는 16대 국회가 저질렀다.

지금 국민은 ‘대선 전에는 분명히 반대했고, 총선 전엔 확실히 찬성했다가, 지금은 매우 어정쩡’한 한나라당을 주시하고 있다. 천도(遷都)는 ‘살 곳(읍·邑)을 함께 건설하는(여·?) 모습’을 그린 천(遷)의 자원(字源)처럼 기존의 도시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 도시를 건설한다는 뜻이다.

굳이 이전하려면 개성(開城)같은 곳이 좋지만, 아무튼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빨리 결판나야 한다. 도대체 국론이 시끄러워 못살겠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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