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도 올해처럼 지루한 장맛비로 시작됐었다.
하늘은 온통 짙은 회색으로 찌푸려져 있었고 사람들은 우산을 꼭 쥔 채 총총 걸음으로 귀가를 서둘렀다. 늘 축축했던 아스팔트에는 차에 치인 쥐 1마리가 며칠동안 방치되어 있었고 TV에선 연일 물가가 날개를 달았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90년대 한반도를 강타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에 의해 살해됐다’는 가설, 그리고 김진명. 그를 만난 건 바로 그럴 즈음이었다. 다들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는 바깥 세상 돌아 가는 사정은 영 관심이 없는듯 보였다. 신문들마다 ‘여소야대(與小野大)’니 ‘호헌정국(護憲政局’이니 하는 찌푸둥한 제목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푹푹 찌는 더위에도 오후마다 어김 없이 시위는 계속됐고 그때마다 학교 앞에 빽빽하게 심어진 쥐똥나무들 위로 매캐한 최루탄 가루가 하얗게 내려 앉곤 했었다.
부산이 고향이었던 그로부터 충격적인 ‘주장’을 들은 건 바로 그때였다. “혹시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한 건 미국의 공작이 아니었을까?” 불쑥 던진 이 말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졸업을 하고 한참이 흘렀는데도 그 가설은 늘 상념의 바다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곤 했었다. 그 말이 남긴 여운을 애써 부정하며 “설마”란 어줍잖은 표현으로 일축은 했지만….
과연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현대사를 다시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상상의 도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우리들에게 “백범 김구 선생도 미국이 죽였다”는 주장으로 가세했고 그때마다 논리는 날개가 달린듯 비약됐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공교롭게도 신문 지면을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4~5년 정도 지나간 시점이었다. 부산 모 지방지에서 기자로 근무하다 그만 두고 펴낸 소설책이 간략하게 소개됐었다. 제목이 좀 특이했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그것 이외에는 별다른 호기심도 당겨지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로부터 1~2년 정도 지났을까. 이휘소 박사라는 물리학자의 암살을 둘러싼 음모와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미국의 미움을 사 박 전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가설 아닌 가설이 장안을 뒤흔들었다. 소설이 던진 파장이었다. “미국이 설마…” 술자리 화제를 온통 장악하던 그 얘기는 그래서 늘 월급쟁이들의 술자리에선 최고의 안주였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마무리되곤 했었다. 소설은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갔고 그는 가끔씩 면도도 제대로 못해 꺼칠한 모습으로 TV에 얼굴을 비쳤고 한때는 모 정당으로부터 국회의원 공천을 제휴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가설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8년이 지난 엊그제 그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고 서울 한복판 을씨년스러운 골목 모퉁이 찻집에서 재회, 쓴 커피잔을 기울였다. 시간의 공백만큼이나 긴 터울의 침묵 속에서 그가 또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지난 87년 발생한 KAL기 공중 폭파사건, 좀 이상한 구석이 많다고 생각되지 않어?”
그랬다. 몇년 전인가 일본 자유기고가가 이 사건에 대한 석연찮음을 지적한 책이 국내에서도 번역돼 발간됐고 그러잖아도 요즘 일각에선 심심찮게 이 사건이 거론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바짝 다가 앉아 “또 무슨 가설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별다른 얘기는 돌아 오지 않았다.
그와 헤어진 그날 저녁 9시뉴스에는 요란스럽게 화장한 여자 아나운서가 등 푸른 고등어 고르는 방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마치 KAL기 공중 폭파사건에 대한 또 다른 가설을 기다리는듯….
/허행윤 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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