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타잔'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천면(靑川面)은 남동부에 청화산(963m)·조항산(951m)·백악산·낙영산 등의 소백산이 달리고, 북서부에 대산(大山·648m)·주왕산(420m) 등의 산지(山地) 사이에 달천 지류인 박대천과 화양천이 면 중앙부를 흐르는 시골이다. 하늘이 동그랗게 보이는 이곳 선평리(先坪里)에 전학년이 75명인 청천중학교가 있다. 1960년 괴산중학교 청천분교로 개교한 후 1963년 청천중학교가 된 이 학교에서 지난 10일 교내백일장과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 시인·고려대 교수)가 주최하고 문예진흥원이 후원한 ‘2004 시사랑 도서 벽지 순회 시 낭송회’가 열렸다. 이날 시 낭송회에는 청천중학교 학생 전원과 학부모들, 그리고 교장·교감·교사들이 참석하여 육성으로 들려주는 시인들의 자작시를 감상했다. 참석자들은 충청지역과 서울지역에 살고 있는 곽효환 길상호 김순영 김완화 노춘기 박등 박순원 박종국 박주택 여태천 오세영 이근화 이선주 이성렬 임병호 장석원 조정권 최경미 최동호 홍해리 시인과 교내 백일장 입상 학생들의 낭송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는 강당 창문 밖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오세영(서울대 교수) 시인은 ‘타잔’을 낭송했다. “한 밤의 고층 빌딩 / 인터넷을 두드리다 문득 창 밖을 / 내려다 본다 / 꽃들인가, 계곡에 난만히 핀 네온의 불빛, / 강물인가, 까마득히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 헤드라잇 물결, / 일순, 도시는 원시의 정글인데 / 홀로 홈페이지를 검색하는 나는 / 야행성 동물, / 말에 굶주린 숲 속의 타잔같이 / 늘어진 한가닥 코드에 매달려 / 절벽과 절벽을 건너뛴다. / 생명이란 구릿 줄에 흐르는 한줄기 전류, / 그 전원이 켜 있는 동안 / 홀로 콤퓨터를 두드린다. / 계곡의 꽃덤불 속에 숨어 있을까, / 강가의 자갈밭에 숨어 있을까.”

행사가 끝난 후 나눈 좌담에서 임성수 교장은 “우리 학교에서 시인·소설가가 배출될 것으로 믿는다”고 제자들의 글솜씨를 자랑했다. 매년 봄·가을에 교내백일장을 열겠다는 말도 했다. 휴대전화도 잘 걸리지 않는 청천면의 중학생들이 푸른 언어를 찾아 밀림을 누비는 건강한 ‘소년 타잔’들 같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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