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씨 항소심 재판의 문제점

재판부나 송두율씨는 ‘시대의 흐름’이란 것에 인식을 두는 것으로 안다. 정치국 후보위원 및 저술을 통한 반국가단체의 지도적 임무수행 혐의는 공소사실의 핵심이다. 이의 검찰 입증을 증거능력이 없는 것으로 본 판단, 그리고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김일성 주석 조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축하편지 발송을 무죄로 뒤집은 이유 또한 시대의 흐름으로 본 것 같다.

이같은 이유라면 평양을 다섯차례나 방문한 것에 대해 재판부가 ‘대남 공작과 북한 체제 유지와 관련된 목적 수행을 위한 것’으로 보아 일부 유죄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시대의 흐름이란 걸 역행한 자가당착이다. 그 논지대로 라면 이 또한 무죄였어야 할 것이나 당치않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적용돼야 하는 관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의 해악과 위험을 보는 시각이 시대의 흐름을 탄다면 그 가치 기준은 무엇을 말하는지 아울러 제시돼야 한다.

북을 가리켜 동족상잔의 6·25 한국동란을 일으킨 전범단체라고 하면 반세기가 지난 케케묵은 과거를 들춘다고 트집 잡을지 모르지만 과거사 없는 현대사는 없다. 시대의 흐름이 아무리 달라져도 역사에서 과거사가 삭제될 수 없다. 미래를 위해 화해와 용서의 길로 가는 시대의 흐름은 좋지만 이 또한 상대성이 불가피하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남반부 혁명을 민족 과업으로 로동당 규약은 규정하고 있다. 그래도 화해와 용서의 길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예컨대 김 주석 조문과 김 위원장 축하편지를 재판부 판단대로 ‘의례적’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친북 이념 세력의 이런 ‘의례’ 행위를 방치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국가의 기본 질서에 해악을 끼치는 명백한 위험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재판부는 “처벌보다는 포옹이 더 중요하다”고 했지만 풀려나온 걸 마치 투사처럼 영웅시하는 그가 과연 포옹의 대상인 지를 묻는다. 송씨에게도 해야 할 말은 있다. ‘시대의 흐름에 열린 자세’란 것을 남쪽에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북측에 더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지 않고 북은 두둔하고 남쪽만 힐난을 일삼으면 경계인이 아닌 이미 북쪽 사람임을 스스로가 시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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