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의 아침/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는

과거나 현재의 역사 흐름속에서 ‘지도자’는 그 역할이나 행태가 조금씩 달랐다.

새나라를 세울때나 군웅들이 할거할 때의 지도자는 민심을 등에 업고 ‘국민의 힘을 하나로 묶어 난(亂)을 극복하는 선도형’이었으며 고복격양(鼓腹擊壤)의 안정속에서는 ‘국민이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갖가지 대안책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만전지책(萬全之策)형’이었다.

또 혁명이나 반란 등을 통해 정권을 잡은 지도자는 ‘국민을 선도하기 보다는 억압과 복종만을 강요하는 위로부터의 강압형’이었으며 국민이 사분오열되고 사회가 혼란을 겪는 시대의 지도자는 ‘말 한미디만으로도 국민들이 ‘한 번만 더 믿어보자’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호소력이 풍부한 설득형’이었다.

물론 한 국가와 한 사회를 이끌어 왔던 지도자들을 단 한가지의 특징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가 재임시절이나 일생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대부분 그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동서(東西)는 물론이고 우리 역사속에서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당면한 현 시점에서는 ‘과연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국제적으로는 강대국의 판도가 변화하고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쟁 및 국지전 등으로 서로의 관계가 난마처럼 얽히면서 우리가 나가야할 길을 찾아야 하고 국내적으로는 국가균형발전에다 행정수도이전 등 일맥 상통하는듯한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을 통합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내야 하는 등 뭐라 딱 단정지을 수 있는 ‘지도자 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남북분단의 현실도 극복해야 하고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도 이루어야 하는 만큼 이제는 과연 ‘한 사람의 지도자의 역할’만으로 이런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 의구심까지 든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사회일각에서는 ‘위에 있는 지도자가 아닌 앞에 설줄 아는 지도자’, ‘고집스럽게 개똥철학을 앞세우는 지도자가 아닌 사고가 열린 지도자’, ‘자신의 주장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화합형 지도자’ 등 ‘신(新) 지도자론’이 종종 거론된다. 시대적 요구를 앞세운 이같은 신 지도자론에 비추어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절반의 성공은 이미 거두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하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든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듯 자신의 철학만을 앞세워 ‘말도 못하게 한다’ 든가,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한다’든가, ‘모든 국정이 대통령의 눈치를 본다’ 든가 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 역시 절반의 실패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와관련, 노 대통령은 언제가 ‘열매를 따먹는 대통령이 아닌 나무를 심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미의 말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참으로 옳은 생각이 아닌듯 싶다.

얼마전 만난 노학자 한분은 “포호빙하(暴虎氷河·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 잡고 걸어 강을 건넌다는 의미로 용기는 있으나 무모하게 행동함을 견제)형, 평지기파란(平地起波瀾)형 등의 대통령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지금은 대통령이 국민의 의중을 살피고 그 뜻이 끝까지 훼손되지 않도록 설득하고 타협하는 ‘아래에 있는 대통령’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기대하는 만큼 국민들의 주문사항이 많아 ‘대통령도 못해 먹겠다’는 말이 이해가 될듯도 하다.

/jungih@kgib.co.kr

/정일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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