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조조(曹操·154~220)는 자타가 공인하는 용인(用人)의 천재였다. 위나라의 조조와 촉나라의 유비, 오나라의 손권 등이 중국을 삼분하고 싸우던 삼국시대의 일이다. 조조의 오랜 벗으로 위충이란 인물이 있었다. 조조가 연주전투에서 계속 패하자 배반하고 적에게 투항하는 자가 많았는데, 조조는 “오로지 위충만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요”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위충마저 달아나고 말자 조조는 대로하여 그를 잡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조조의 군대가 위충을 사로잡아 오자 ‘재능 있는 사람’이라며 그를 묶었던 오랏줄을 풀어주고 다시 임용했다. 위충을 이렇게 대접하자 조조를 배반하고 달아났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다시 돌아왔다.
관도전투에서도 빼앗은 원소의 문서 가운데 조조 진영의 일부 사람들이 원소에게 보낸 항복문서들이 발견됐지만 조조는 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모두 불태운 뒤 말했다. “원소가 강력했을 때는 나도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었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조조는 필요에 따라 얼굴표정을 자유자재로 지을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흔히 쓰는 ‘체면(體面)’이라는 말과 비슷한 중국어로 ‘미옌쯔(面子)’란 것이 있다. 우리에겐 체면이 실속없이 형식적인 겉모습을 의미하는 것에 비해, 중국인들이 말하는 체면에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 나아가 ‘존재가치’의 뜻이 담겨 있다. “차라리 내가 천하를 등질지언정 천하가 나를 등지게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처럼 조조는 고대 중국에서 체면을 가장 중시했던 사람으로 꼽힌다.
세련되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의 원소나, 키가 8척(188㎝)을 넘고 용모가 위풍당당했던 형주자사 유표, 각각 키가 7척5촌, 8척이었던 유비와 제갈량 등에 비해 외모가 출중하지 못했던 조조가 천하를 차지한 힘은 면자(面子)에서 나왔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체면을 세우고 호방한 기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던 처세술 덕분이었다. 조조의 처세술은 체면이 구겨졌을 때 특히 떠오른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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