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노미네이션’?

우리나라의 화폐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 문제가 정·관계에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장기적인 전망으로 볼 때 변경의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렵고 물가불안까지 중첩된 상황에서 공연히 화폐단위변경 같은 충격요법을 쓸 필요는 없다. 10만원짜리, 5만원짜리 고액권 발행도 마찬가지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화폐단위를 바꾸는 것을 ‘디노미네이션’, 우리말로는 ‘화폐액면절하’로 표현해왔다. 그러나 영어표현이 부정확하다며 9일부터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으로, 우리말은 ‘화폐단위변경’으로 바꾸기로 했다. 화폐단위변경은 화폐단위를 1,000대 1, 100대 1식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1,000 대 1로 바꿀 경우 3천원 하던 자장면은 3원이 되고, 1천500원 하는 택시 기본요금은 1원50전이 된다. 이렇게 화폐단위를 변경하면 우선 물가가 뛸 우려가 매우 크다. 900원짜리 제품이 0.9원이 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1원으로 파는 경우가 많아질 건 뻔하다. 단위만 바뀌기 때문에 착시현상때문에 인플레심리가 커질 수 있다. 예컨대 2천만원짜리 승용차 값을 2천200만원으로 올리면 크게 오른 것 같지만, 2만원짜리 승용차를 2만2천원으로 인상하면 별로 오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경우다.

10만원짜리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검은 돈 등 뇌물수수가 더 번성할 것은 그야말로 불을 보듯 자명하다. 4·15총선을 치르면서 음성자금을 주고 받는 행위가 사라졌다는 주장을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사과상자에, 차 떼기로 수십억, 수백억원의 현금이 왔다 갔다 하고도 모자라서 굴비상자에 2억원의 현금이 전해지는 판국이다. 서민들은 당장 먹고 살기도 버거워 죽기 일보 직전인데 팔자 편하게 화폐개혁이나 논하고 있으니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어느 때보다 안정이 필요한 시기에 또 다른 불안 요소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화폐개혁은 전국민이 동의할 때 논의해도 늦지 않는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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