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나 친북 좌파세력들이 걸핏하면 ‘민족’을 내세우지만 원래 공산주의자들에겐 민족의 개념이 배제된다. 국가의 개념도 제척된다.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 입장을 요약했다는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7년)이 이렇고 코민테른(komintern·1919~1943년)이 이렇게 돼있다.
레닌 등 러시아 공산당과 독일의 사회민주당 좌파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좌파 그룹이 가맹한 국제공산주의의 코민테른, 즉 국제공산당은 국가를 국가로 보기보다는 한 지역으로 보는 일국일당(一國一黨)을 지향하였다. 한나라(지역)에는 복수의 공산주의가 있을 수 없고 하나의 공산당만 있어 국제공산주의 주도아래 민족의 개념을 넘어서는 범인류적 사회주의 혁명을 떨쳐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일제치하의 공산주의 운동가들 중 조선 국내파에선 박헌영 현준혁 등, 중국 무대의 해외파에서는 연안파 등 여러 분파들이 코민테른의 인준을 받기 위한 다툼이 치열했었다.
독립운동 또한 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들은 독립도 독립이지만 국제공산주의 일환의 사회주의 혁명이 종국적 목적이었다. 이에 비해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가들은 순수한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하여 근대사는 이들을 민족진영으로 분류한다.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나라 근본의 정체성 명시다. 반세기가 흘렀다. 세월은 변화를 가져 오지만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나라의 뿌리는 변화를 불허한다. 뿌리의 변화는 곧 소멸이기 때문이다.
작금에 이르러 보수의 민족진영 계승을 당치않게 수구 냉전세력으로 몰아치는 친북 좌파세력이 공산주의 원전에 없는 ‘민족’을 간판구호로 내세우는 것은 모순이다. 북에서 말하는 ‘민족’은 김일성주의의 혁명 용어다. 안으로는 권력의 혈통승계를 분장한 수령론과 이를 옹위하기 위해 불가피한 주체사상의 폐쇄사회를 수호키 위한 용어의 무장화다. 또 밖으로는 남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나면 남쪽보다 우월한 북의 군사력을 직·간접으로 작동해 성숙시킨 남반부 해방을 마침내 완수한다는 것이 민족자주론의 저들 혁명전략이다.
민족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말이다. 그러나 북이 말하는 민족론엔 이처럼 무서운 함정이 있다. 좌파가 힐난 대상으로 삼는 보수세력의 민족 관념과 좌파가 좋아하는 북측이 말하는 민족의 인식엔 이토록 높은 장벽이 있다.
민족의 개념도 달라져 간다. 배달(倍達)의 단일민족은 농경사회에서 가능하였다. 이민족간의 혼인이 국내외에서 보편화 됐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할 것이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베트남 등 이밖에도 숱한 외국의 여성이 국내 남성과 혼인하여 자녀를 낳고 있다. 외국으로 혼인해간 국내 여성도 많다. 이밖의 해외동포들도 있다. 세계 140여개 나라에서 정주하고 있는 재외동포가 약 522만명에 이른다. (통일부 ‘세계의 한민족편’) 해외동포들은 우리 민족끼리 혼인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민족과 혼인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학에서는 이리하여 민족관의 국가 개념 보다는 국민관의 국가 개념으로 바뀌어 간다는 ‘국민민주사관설’이 제기되고 있다. 민족지상주의에서 국민지상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만 해도 50여 민족이 있고 미국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수많은 인종 전시장의 잡종 나라다. 영국에도 프랑스에도 흑인 국민이 많다. 그래도 이들은 나라마다 강력한 국가사회를 영위한다.
좌파가 친북이 아닌 동반관계의 진보세력이라면 뭘 좀 알고 말을 해도 하면 좋겠다. 만약에 알고 말을 그렇게 한다면 북으로 가든지 해야 한다.
‘민족’은 분명히 가치성과 희소성이 있는 어휘다. 그러나 용법에 따라 뜻이 판이하다. 야구 방망이가 야구선수 아닌 강도의 손에 쥐어져 있을 땐 곧 흉기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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