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감사용, 꽃 피는 봄이오면, 우리 형
가을 한국영화계는 ‘서정’으로 물든다.
지난달 개봉한 ‘가족’을 필두로, ‘슈퍼스타 감사용’, 추석직전 개봉한 ‘꽃 피는 봄이 오면’, 오는 17일 개봉하는 ‘우리형’ 등 추심(秋心)을 물들이는 작품이 이어진다.
이들 영화는 약속이나 한 듯 잔잔한 감동을 모토로 삼았다. 간혹 자극적인 장면도 있으나 작품 주제는 뜨끈뜨끈한 가족애다. 가을 관객들을 감동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슈퍼스타 감사용’과 ‘꽃피는 봄이 오면’은 비루한 사나이의 꿈과 희망을 그리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가진 것 없고 실력도 없다. 하지만 꿈은 있다. 아니, 꿈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이들의 하루하루가 바로 우리의 일상이고, 그 자체가 소중하다.
“오늘도 또 졌습니다”라는 스포츠캐스터의 말을 등 뒤에 달고 다니는 야구 투수와 오디션이라고 응시만 하면 매번 낙방하는 트럼펫 연주자. 참 볼품없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인생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을 맡고 있고, 누구나 ‘꽃피는 봄’에 대한 기대를 가슴 한 구석에 묻고 사는 것이다. 거기서 잔잔한 감동은 솟아난다.
그뿐이랴. 이들 영화 역시 엄마라는 아킬레스 건을 놓치지 않았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엄마 김수미의 자상하고 성실한 모습은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고, ‘꽃피는 봄이 오면’의 엄마 윤여정은 자애로움으로 짠하게 다가온다.
이들 영화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가 ‘못난 자식’이라는 것이다. 하나같이 엄마(혹은 아빠)한테는 죄인이다.
‘가족’의 수애는 소매치기에 살인미수로 감옥을 다녀온 후에도 뭐 잘났다고 아버지에게 사사건건 대든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이범수는 곱게 다니라는 직장을 때려치더니, 꼴찌 야구팀의 투수가 된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최민식은 돈 안되는 음악을 하겠다며 청춘을 보내고, 약혼녀마저 잡지 못하는 처지. ‘우리형’의 원빈은 허구헌날 싸움질에 엄마가 교무실 문턱이 닳도록 불려다니게 만든다. 그 때문에 참으로 지난하고 지지리궁상이다.
여세를 몰아 과잉의 혐의도 짙다. 관객의 감성을 철저하게 자극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니 어느 대목에서건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수 있겠는가. 실제로 그런 면에서는 가장 얌전한(?)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고 네 번이나 울었다고 영화 홈페이지에 고백한 관객도 있다.
그러나 사실 뭐 어떤가. 옷깃을 여미는 가을. 저 밑에 숨겨뒀던 감성의 숨구멍을 한껏 열고 대대적인 환기를 시켜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즐거움이 없다고 해도 배꼽 잡는 코미디에만 기댈 일은 아니다. 다소 지루하거나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해도 이들 영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자. 카타르시스만한 쾌감도 없다.
■웨일라이더
세상을 딛는 소녀의 미소
14살 휴즈양 감동연기 ‘세계 주목’
오래간만에 뉴질랜드산 영화가 한국 관객과 만난다.
5일 개봉하는 ‘웨일 라이더’(Whale Rider)는 자본과 스태프, 배우 모두 뉴질랜드 출신인 뉴질랜드 영화다.
뉴질랜드는 ‘반지의 제왕’이나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영화의 촬영지로 더 익숙하지만 꾸준히 자국 내에서 세계적인 화제작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9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제인 캠피언 감독의 ‘피아노’를 비롯해 피터 잭슨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들’(Heavenly Creatures), 리 타마호리 감독의 몬트리올 영화제 4개부문 수상작 ‘전사의 후예’(Once a Warriors) 등은 모두 뉴질랜드 국적을 가지고 있다.
‘웨일…’는 선댄스 영화제를 비롯해 로테르담, 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곳곳의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인기를 모았던 영화. 특히 여주인공인 14살 소녀 케이샤 캐슬 휴즈의 연기는 가는 곳마다 호평을 받은 끝에 마침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다.
고래를 탄 사람을 뜻하는 제목 ‘웨일 라이더’는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인들의 실제 전설이며 영화 속 파이키아가 속한 부족의 믿음에서 따왔다. 뉴질랜드 땅에 최초로 온 이들의 선조는 고래의 등을 타고 바다를 건너왔으며 그도 소녀와 같은 파이키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마을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마오리인 소녀 파이키아(케이샤 캐슬 휴즈). 그가 살고 있는 해변 마을에는 장남만이 부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관습이 있다. 다른 아이 이상으로 영특함을 보이지만 그는 지도자를 뽑는 훈련에서 제외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파이키아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그다지 축복받지 못한 존재였다. 파이의 어머니는 출산 도중 파이의 쌍둥이 오빠와 함께 숨을 거뒀고 아버지 프로랑기는 그 충격으로 고향을 떠났다.
이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 의해 자라지만 파이키아는 할아버지에게 아무래도 기대하던 손자보다는 못한 손녀일 뿐이다.
할아버지는 마을의 장남들을 모아 지도자를 뽑으려 하지만 하나같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 할아버지 몰래 훈련을 받으려는 파이키아. 하지만 할아버지는 오히려 불경스러운 일이라며 꾸짖고, 파이키아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영화의 미덕은 애정을 갖고 인물들을 비추는 낮은 시선의 카메라에 있다. 처음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던 관객은 이 덕에 전통을 위해 고집을 부리는 할아버지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소녀 파이키아, 그리고 세상을 떠도는 젊은 아버지와 나태한 채로 세상을 즐기는 삼촌까지 가족 모두의 삶 속 깊숙한 곳에 방문할수 있게 됐다.
인물에 대한 공감이 후반부 눈물로 이어진다면 파이키아 역의 소녀 케이샤 캐슬휴즈의 연기 덕이다. 상영시간 101분. 전체 관람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가슴저린 사랑 기억
최루성 멜로…올해 日 흥행 1위 기록
왜 그동안 그렇게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잊혀진다는 게 너무 두렵다”는 말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그녀를…. 아키가 죽던 날 몰아쳤던 태풍 29호, 함께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서로 주고받던 카세트 편지, 첫 키스를 나누던 강당과 같이 수업을 듣던 교실…. 아쉽게도, 서른 줄에 접어든 사쿠(오사와 다카오)에게 이런 기억들은 일상에서는 좀처럼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는 그런 일들이다.
숨막힐 듯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들은 그를 1986년, 먼 과거의 추억에 잠겨있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고향 시코쿠로 가는 비행기를 탄 날도 야근에 지쳐 회사에서 아침을 맞이하던 어느 날이다.
결혼을 얼마 앞두지 않은 그는 약혼녀 리쓰코(시바사키 고)와 이삿짐을 나르기로 한 약속도 잊고 있었다. 뒤늦게 리쓰코의 집에 도착하지만 리쓰코는 한동안 쉬었다 오겠다는 편지만 남겨둔 채 사라진 후. 우연히 리쓰코의 행선지가 자신의 고향 시코쿠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쿠. 하지만 리쓰코를 찾으러 간 그곳에서 그는 가슴 깊숙이 잠들어 있던 아키를 발견한다.
올해 일본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8일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다. 감독은 ‘고(GO)’를 만들었던 유키사다 이사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사쿠(모리야마 미라이). 동급생 아키(나가사와 마사미)가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교장 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다. 학생 대표로 고별사를 낭독하는 아키는 질질 짜고있는 다른 여학생들과는 달리 담담한 모습이다.
공부도 잘하고 육상 선수인 데다 얼굴까지 예쁜 아키. 아키에게 사쿠의 첫 인상은 언제 생각해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한다. 육상 연습 중 우연히 올려다본 교실의 유리창, 입을 쩍 벌리고 야키소바(볶음국수)와 빵을 먹는 사쿠의 모습을 보고 아키는 미소를 짓는다.
어느날 하교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아키가 당돌하게 사쿠의 스쿠터에 올라타면서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데는 휴대용 카세트녹음기 워크맨과 라디오가 매개체가 된다. 음성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심야 방송에 엽서를 보내기도 하면서 아키와 사쿠는 소중한 첫사랑을 가꿔간다.
장밋빛 사랑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것은 단 둘이 여행을 떠난 무인도에서다. 아키가 갑자기 쓰러진 것. 병원으로 옮겨진 아키, 백혈병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하는 그에게 아키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병세는 악화되고 아키도 점차 희망을 잃게 되던 어느날, 사쿠는 아키가 늘 ‘세상의 중심’이라고 부르던 호주의 울루루에 그를 데려가기로 마음먹는다. 몰래 병원을 빠져나온 두 사람. 하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으로 둘은 결국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아키는 공항에서 쓰러진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줄거리지만 가을 극장가 ‘최루성 멜로 영화’의 팬들에게 넉넉한 여백과 잘 정돈된 화면, 서정적인 배경 음악이라는 이 영화의 미덕은 반가울 따름이다. 상영시간 138분. 12세 이상 관람가.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
‘내겐 너무…’는 포르노 스타에게 빠진 고교생이 정신·육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섹스 코미디이자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감당하는
희생과 모험을 담아낸 로맨틱 러브스토리다. 8일 개봉.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