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계급과 서열이 조직의 근간이다. 지휘명령 계통의 생명이다. 동기생일 지라도 계급차이가 있으면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같은 계급 간엔 군번 빠른 군인이 선임자가 된다. 이러므로 진급은 군에선 더 할 수 없는 영예다. 병장이 되면 만기제대하는 의무 복무의 병사들도 한 계급이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하물며 직업군인인 부사관 이상은 계급이 생명 다음으로 소중하다. 이처럼 소중한 계급을 낮춰가며 직업군인으로 재입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희한하다. 이토록 희한한 사람들이 올들어만도 지난 7월 말까지 120명인 데 연말까지 250명쯤 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육군부사관학교에 재입교를 지원하는 이들은 중사·상사 출신들이며 그 중에는 장교 출신도 있다는 것이다.
장교나 상사·중사로 있다가 전역한 뒤에 부사관학교에 들어가 전 계급보다 낮은 하사로 임관받아 직업군인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하사의 초임 연봉은 1천730여만원에서 1천900여만원이다. 또 부사관에겐 주택이 제공된다. 일반 공무원에 비하면 8·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처우라 할 수 있다.
평생에 군대는 한 번만 가는 줄 알았던 입대를 이처럼 두 번이나 하는 것은 경제난이 이유다. 중사로 제대한 어떤 사람은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개업해 사업의 꿈을 펼쳤으나 장사가 안되어 실패했다. 빚만 걸머진 채 직장도 구할 수 없어 부사관학교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는 청년실업이 넘쳐나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거리엔 노숙자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이 정권의 실정은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도 도시 반성할 줄을 모른다. 그 무서운 IMF도 지금에 비하면 약과라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다.
군의 최고 영예인 계급을 자진해 강등해서라도 직업군인이 다시 되기 위해 부사관학교를 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 같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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