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國力의 원천

몇 해 전 영국의 쉐필드(Sheffield)라는 곳의 한 단조(鍛造)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낙후돼 보이는 공장시설과 주로 수동(手動)으로 이뤄지는 원시적인 작업방법에, 국내의 현대화된 공장과 자동화시스템의 생산설비 등을 주로 접해 온 필자에게 은근히 자긍심이 솟는 순간, 그곳에서의 주 생산품이 우주항공물체의 머리부분에 들어가는 특수재질의 특수부품으로 납품처가 NASA(미항공우주국)이며, 그 제품은 세계에서 자기네만이 만들 수 있다는 득의에 찬 설명을 접하곤 과연 산업기술력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되새겨본 기억이 난다.

십수 년 전에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배스토로스라는 곳의 한 핵연료가공(nuclear fabrication)공장을 어렵게 방문한 적이 있었다. 경계가 엄격한 핵단지(核團地)인 그곳에서의 인상은 대단히 평화스러워 보였지만 장미열매를 익혀서 먹는다고 자기고장의 특징을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 주던 건장한 체구의 공장장은 대단히 거만하고 교만해 보였다. 핵연료 가공시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시절 비 엔지니어인 필자의 우문 탓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받는 자가 아닌 주는 자의 태도에서 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사실 스웨덴은 900만명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나라이면서도 노벨상을 주는 나라다. 주는 자리와 받는 처지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은 그네들의 산업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물론이지만 그 때에도 그들은 Volvo, Saab, Erisson, ASEA, SAS 등의 자동차, 전기통신, 원자력발전, 항공사, 기관차 부문에서 세계적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오스트리아의 한 철강 엔지니어링회사를 방문해서 그네들이 자랑하는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연구진들은 나이가 꽤들은 기술자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도 어리고 화장기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젊은 아가씨들이 대부분이었던 사실에 오스트리아의 힘의 원천이 어디인가를 일면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시드니의 해수욕장이나 몰디브의 고도, 태국 파타야의 해변, 필리핀 보라카이해변 등의 요지에 으레 있게 마련인 스위스인 소유의 별장이나 빌라는 커피 한 톨 생산 않는 나라가 향(香)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역량에서 얻어진 당연한 결과를 보는 듯 했다. 전 세계 많은 당뇨환자들이 맞고 있는 인슐린 주사약은 양돈국인 덴마크에서 생산되어 미국의 제약회사를 통해 공급함으로써 고 부가를 이룬다는 사실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이상이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특수강하면 으레 독일이려니 생각했던 필자에게 한 독일인 기술자가 특수강은 누가 뭐래도 이탈리아 밀란 다니엘리(Milan Danielli)라며, 섬유 패션을 비롯한 전문성의 원천이 세계제패 로마인의 후손이라는 그네들의 자세와 무관하지 않음을 일깨워 준다. 유럽의 대학교하면 으레 모모를 꼽지만 영국의 Cranfield, 네덜란드의 Erasmus, 스위스의 ST. Gallen, 이탈리아의 Bocconi 등이 굉장한 경쟁력을 지닌 학교임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호주의 소젖을 덴마크의 기술로 가공 처리하여 동남아 시장에서 판매하는 우유 사업주는 대만(臺灣)인 화교이다.

한국은 대(大)국도, 소(小)국도 아닌 중(中)국이다. 지금 우리의 주변국들이 힘(力)을 바탕으로 역사왜곡을 통해서, 또 영토관할권에 대한 도전을 통해서 그들의 패권(覇權)을 신장시키려 하고 있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힘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이며, 또 누가 그것을 이끌어 낼 것인가? 그 힘은 과거(過去)나 국내(國內)에서만이 아니라 미래(未來)와 국외(國外)에서 이끌어 내야한다. 지금처럼 중규모의 강국(强國)으로 키워갈 위대한 리더십(great leadership)이 절실한 때가 또 있을까?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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