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 旗

역사적으로 볼 때 국기는 주로 외교적 목적이나 왕실을 대표하는 상징적 성격이 짙었다. 태극기의 경우도 조선 왕실의 어기(御旗)나 대한제국 국기로만 있을 때는 백성(국민)들의 애정이 그리 깊지 않았다. 그러나 외세로부터의 독립정신을 고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태극기는 약화된 왕실을 보호하고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 민기(民旗)로 인식됐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탄당한 이후 태극기에 민족애가 녹아 들었고 3·1운동 이후에는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나 함께 태극기를 국권회복의 상징으로 삼았다. 8·15 광복 이후 1949년 1월 국기제정위원회를 구성한 대한민국이 항일애국 선열들의 민족혼이 담겨 있던 태극기를 국기로 채택함으로써(문교부 고시 제2호, 1949·10·15)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은 고스란히 유엔의 유일합법 정부인 대한민국으로 계승됐다.

그러나 북한은 1948년 4월 남북협상 전까지 소련 깃발과 함께 태극기를 공식 사용하다가 붉은 군대식(별, 낫)의 소위 ‘인공기’(홍람오각별기)를 자신들의 깃발로 확정(1948·4·29)함으로써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민족정기의 근원인 태극기 정신으로부터 이탈했다.

얼마 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서 대만이 올림픽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땄을 때 여자선수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우승에 대한 감격의 눈물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국부(國父) 손문(孫文)이 고안한 자유중국기(靑天白日滿地紅旗) 대신 대만올림픽위원회의 깃발이 게양되고 국가(國歌)대신 IOC의 국기가(國旗歌)가 울린 것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식민지 백성이나 패전 국민의 심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하여야 한다.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서 우승자의 당당한 모습 대신 고개 숙인 모습으로 있었던 이유는 가슴에 태극기가 아니라 일장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손기정 선수의 모습은 무언의 독립운동 그 자체였다. 이렇듯 귀중한 국기(태극기)가 요즘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관공서도 있었다. 민족정통성의 국기(國基)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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