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내 머리 속의 지우개.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우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사랑의 기억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깔끔한 정통 멜로 영화가 탄생했다. 오는 5일 개봉하는 톱스타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편지’ ‘접속’ ‘약속’ 등 1990년대 후반 스크린을 평정했던 멜로 영화의 바통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았다.

이 영화는 드라마, 스타일,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고루 90점을 넘어선다. 최루성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통속적이지만 그 나름의 신선함이 배어난다. 여기에 스타성은 A+. 상업 멜로 영화로서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마지막 손맛이 다소 부족하다고 해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넌 너무 자신만만해. 인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 극중 철수(정우성 분)와 수진(손예진 분)이 결국 번갈아 가며 내뱉는 이 대사는 영화의 통속성을 상징한다. 예상대로 사랑은 핑크빛이 아니고 두 배우는 잇따라 눈물 흘리기 경쟁을 펼친다.

철수와 수진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결혼에 골인하지만 수진이 스물일곱 나이에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리면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뻔함을 불식시킬 만큼 색이 잘 들었다.

“내가 대신 다 기억해줄게, 내가 네 기억이고, 영혼이야” 철수가 자신을 떠나려는 수진을 달래며 하는 말. 이 말이 ‘닭살스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전개된, 둘이 사랑을 나누는 과정이 그만큼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유부남 상사와 도망치려다 버림받은 수진이 건설판 일꾼 같은 철수와 사랑에 빠지는 세세한 에피소드와 광고 같은 화면이 차곡차곡 쌓여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멜로영화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스타일과 연기의 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정우성과 손예진은 같이 있는 모습이 하나의 CF였으며,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서 진짜 서로 사랑에 빠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본 요미우리TV에서 방송한 12부작 드라마 ‘퓨어 소울’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 여성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잔인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여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린 할리우드 클래식 ‘러브 스토리’의 전형성을 빗겨간다. 그럼에도 감독은 ‘최루성’이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이재한 감독은 “말초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울음이 메아리지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13살 소녀→‘서른살 킹카’ 꿈 이루다!

13살 소녀들은 꿈꾼다. 멋진 아가씨가 되는 꿈을. 지금은 가슴이 ‘평면’이고 치아에는 보철을 했지만 나도 언젠가는 모델 같은 아가씨가 될 테야.

오는 5일 개봉하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의 여주인공 제나는 아가씨 중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위치에 있는 서른 살을 꿈꾼다.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서른 살의 커리어 우먼. 그녀에게 딱 한가지가 없다면?

영화의 원제는 ‘13 going on 30’.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 중하나인 ‘16 going on 17’가 문득 떠오르는데, 제나는 나이를 한 살 한 살 차근차근 먹는 것이 아니라 무려 17년이나 건너뛴다. 13살 생일에 소원을 빌었더니 다음날 아침 30살로 깨어나는 것. 소원대로 근사한 서른 살이 된 제나. 과연 그의 삶은 행복할까.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이 주는 뉘앙스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 그러나 영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박자감, 음감이 아주 괜찮은 팝송으로 경쾌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톰 행크스 주연의 ‘빅’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그리고 마이클 J.폭스 주연의 ‘백 투더 퓨처’의 장점만 모아 만들었다. 성의없는 아류가 될 수도 있었으나 영화는 매력적인 소재들을 대단히 깔끔하게 버무리며 A급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했다.

서른 살이 된 제나에게는 근사한 남자친구와 멋진 직장이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제나는 13살 때의 단짝 이웃집 소년 매트를 수소문해 찾아간다. 그러나 매트는 지난 17년 간 제나가 안겨준 상처로 가슴앓이를 해왔다.

힘든 일이 있을때마다 매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제나는 결국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둔 매트에게 점점 빠져든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13살 소녀의 유치한 소원에서 출발했지만 그 전개는 지극히 성인의 눈높이에 맞췄다는 것. 소녀의 감성과 순수함을 계속 환기시키며 서른살 어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달콤하게 그렸다.‘데어데블’의 여전사 제니퍼 가너가 담백한 매력을 과시하고, 무엇보다 로맨틱코미디의 여성 관객들을 사로잡을 남자 주인공 마이클 러팔로가 ‘별볼일 없어 보이는데 멋진’ 남성으로 그려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극중 러팔로는 외양은 평범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스위트’한 남성이다.

■우작

터키의 낯설은 풍경… 곳곳에 숨은 매력

지난해 5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우작(Uzac)’이 5일 서울 코엑스아트홀 등에서 뒤늦게 선보인다.

‘우작’이 극장을 쉽게 잡지 못한 까닭은 단지 흥행 가능성이 낮다는 것. 대다수 극장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우작’은 배우들의 얼굴도 낯설고 형식도 생경하며 줄거리 전개도 지루해 보인다. 그러나 칸을 비롯한 많은 영화제의 심사위원들과 유수 언론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만큼 곳곳에 매력이 담겨 있다.

영화는 시골 마을의 들판에서 점으로 시작된 한 사람이 차츰 카메라로 가까이 걸어오는 롱테이크 장면으로 시작된다. 유스프는 일자리를 찾아 이스탄불에 있는 사촌 형에게 가는 길이다.

배경은 바뀌어 사촌형 마흐무트의 집. 사진작가인 그는 아내와 헤어진 뒤 정부와 가끔 정사를 즐기다 유스프가 찾아오자 사생활을 방해받는다. 처음에는 고향 안부도 궁금한 데다 며칠만 있으면 선원으로 취직할 것이라는 기대로 기꺼이 맞아주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일자리를 구할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 자신만의 생활 공간에 그가 차지하는 자리가 점점 넓어지자 짜증을 내고 만다. 유스프도 형의 이중적인 태도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유스프와 마흐무트의 갈등은 마흐무트가 회중시계를 둔 곳을 잃어버려 유스프를 의심하면서 폭발하고 만다.

등장인물도 단출하고 줄거리도 단순한 데다 대사마저 거의 없어 지루하게 느껴질 법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의외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공동체 파괴와 구직난 등 터키의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이슬람 세계답지 않게 성적 관심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대목도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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