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하철 역 앞에서의 일이었다. 구걸하는 두 사람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동정심이 발동해 한 사람에게만 얼마를 주고 가려는데 못 받은 다른 사람이 다가와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왜 똑같이 구걸하는데 이 사람에게만 주고 자기는 안 주느냐는 게 시비의 이유였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이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구걸하는 자가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나 권리가 있다면, 그의 시비는 정당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어디서든 구걸하는데 그런 권리가 부여된 곳이란 없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다. 주고 안 주고는 온전히 주는 사람 맘 대로다. 흔히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있는데, 제 것을 제 마음대로 매매·양도·처분할 수 있는 경우 우리는 흔히 그런 말을 한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데 있어서 누구든 간섭이나 참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 것은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있는 사회라면 자기의 것을 임의로 사용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경우처럼 구걸하는 자가 왜 자기를 차별대우하느냐면서 시비를 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과 관련해 (3)번이 정답인 선다형의 경우 다수가 (1)번을 정답으로 답했다 해서 정답이 (3)번에서 (1)번으로 바뀌겠는가? 정답과 오답은 다수냐 소수냐에 관계없이, 정답은 항상 정답이요, 오답은 항상 오답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실(yes)을 사실(yes)로, 사실이 아닌 것(no)을 사실이 아닌 것(no)으로 판단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그런데 만약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 한다든가 또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실이라고 판단한다면 이는 모두 그릇된 판단이며 오류이다. 전자의 오류를 우리는 알파(α)오류, 후자를 베타(β)오류라 하는데, 오류는 반드시 오류로 판명되게 마련이다. 오류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류는 그 자체가 이미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오류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한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는 흑백논리(黑白論理)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관해서도 흑백논리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며,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과 주의·주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더 바람직한 것으로까지 받아들이는 잘못을 범한다.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와 상대주의(相對主義; relativism)에 익숙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더 더욱 그러하다. 현대는 다양한 주의·주장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옳은 것뿐만 아니라 알파오류나 베타오류도 모두 수용하려 한다.
오류의 견지에서 볼 때, 무신(無信; atheism)은 알파오류이며, 미신(迷信; superstition)은 베타오류이다. 수도이전 등과 같이 중차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전략적 결정에 있어서는 특히 무신(無信)과 미신(迷信)의 두 가지 오류를 피하는 옳은 판단을 유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옳은 판단에 기초한 결정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고, 그릇된 판단의 결정은 항상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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