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의 변방 국가로 폄하시킴에 따라 국내 역사학계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큰 관심을 불러일켰다. 중화사상에 입각한 중국의 노골적인 고구려사 편입 주장과 함께 고구려 연구재단 등 학술단체와 시민모임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기북부는 남한내 고구려 유적의 80%가 분포할 만큼 중요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다 경기지역은 한강하류와 임진강, 한탄강 유역을 중심으로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였던 곳인 만큼 고대사 연구에 더욱 중요성이 부각돼고 있다. 이에 기전문화재연구원(원장 장경호)과 서울경기고고학회(회장 배기동)는 9일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기전지역 고구려 유적의 정비와 활용을 위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도내 고구려유적 되살려… 中 역사왜곡 맞선다”
이날 학술토론회에는 학계와 언론,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초청, 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기조강연 ‘경기지역 고구려 유적이 갖는 역사고고학적 의미’를 시작으로 총 8개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고구려 유적의 체계적인 관리와 방안을 모색했다.
다음은 각 주제 발표자들의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경기지역 고구려 유적이 갖는 역사고고학적 의미(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경기도는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각축전을 벌인 현장인 만큼 삼국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고구려 유적을 조명해야 한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이 부상되면서 고구려사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만약 고구려사만 부각된다면 고구려보다 앞선 시기에 한강유역을 차지했던 백제사 연구는 뒷전에 밀릴 수 밖에 없다.
이에 고구려-백제 관계사를 동시에 밝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하며, 개발의 위협 속에 방치된 고구려 유적을 사전에 보호하고 학술적 고증을 거쳐 관광자원 등 활용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경기지역 고구려 유적의 보전 정비, 복원 방안(김홍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발굴·복원은 전체 유적의 10%를 넘지 않는 등 최소화 해야 한다. 발굴은 결국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발굴을 하기보다 과학이 발달된 후손에게 넘겨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산발적인 정비·복원에 앞서 전체적인 틀을 갖춘 종합계획과 학술조사가 선행되야 한다.
한편 성곽만 지정한 현행 문화재보호법을 개정, 성 내부 시설 유적 등을 폭넓게 지정하고 주변 문화유적과 연계해 문화유적 벨트를 구성해야 한다.
▲경기지역 고구려 유적의 활용방안(이장섭 한양대 강사)=세계화 확산 추세에서 자국의 문화유산 활용은 국가이미지를 문화적으로 담보할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더욱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에 치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유적의 활용은 역사교육 내지 문화체험은 물론 문화관광자원 및 문화상품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먼저 고구려 문화와 생활상을 총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고구려문화단지’의 건립이다. 경기도내 성곽지역 중 접근이 용이하고 고구려의 특성이 강한 지역을 선정, 산성의 원형을 살린 다목적 문화시설로 조성해야 한다.
고구려사 관련 연극, 무용극, 뮤지컬 등 창작예술 개발과 디지털 기술을 통한 고구려 가상박물관 그리고 고구려 유적이 속한 지자체가 고구려 축제에 관심을 갖을만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구려 유적에 대해 임기응변식 활용보다는 중장기적인 계획하에 충분한 예산지원과 전문인력을 갖춰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
▲도민이 바라는 고구려 유적 관련 사업(이연섭 경기일보 문화부장)=그 동안 방치해온 고구려 역사 바로 세우기와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문화컨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먼저 경기북부 고구려 유적의 보존·정비를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시대적 상황과 유적의 중요도 등을 고려할 때 전폭적인 국비지원이 필요하며, 경기도와 각 시군, 학계 등 전문가집단과 도민은 국책사업 추진에 대한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어 고구려가 당당한 우리 역사이고 훌륭한 문화유산임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컨텐츠를 마련해 생활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토대 마련도 필요하다.
그 예로 유적 정비·보존을 통해 고구려 박물관 및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일반 시민 대상의 고구려 유적답사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해 고구려의 실체를 만끽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구려 유적 관련 사업 방향에 대한 시민단체의 입장(강찬석 서울코리아헤리티지 대표)=군사시설물은 관방유적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주범이다. 고구려 유적은 과거 군사요충지였던 만큼 현재도 전망이 확 트인 곳에 교통호와 헬기장 등을 설치했거나 추가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또 농경지개간 및 건축 등 민간인들의 인식부족 및 해당 관공서의 홍보부족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인위적으로 훼손되고 있는 상황.
여기다 SOFA법에 의해 주한미군의 시설물 공사에는 대부분 문화재 지표조사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
차제에 경기북부 고구려 유적 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한 관방유적 전체를 정비할 마스터 플랜을 세워야 하며, 문화재청에 ‘관방유적과’를 신설해 행정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함께 원형복원이 불가능한 관방유적을 무리하게 복원하지 말고 현상유지 방법으로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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