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악어의 눈물’

기막힌 일이다. 서울 삼남매 소사 사건 말이다. 경찰관 아빠는 야간근무를 하고 엄마는 새벽에 신문배달을 나갔다. 그틈에 몹쓸 불이나 올망졸망하게 나란히 누워자던 어린 아이들이 비명에 숨졌다. 날벼락도 유분수 지 부모에게 이보다 더한 참혹함은 있을 수 없다.

“엄마를 용서하지 마라!” “얼마나 뜨거웠니…”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가슴에 대못이 박힌 엄마는 아이들의 관을 움켜쥐고 통곡했다. 운구하는 경찰 기동대원들도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고 신문보도는 전했다.

정부 기관 앞에서 소복 차림의 침묵 시위가 있었다. 몸파는 여성들이다. 매매춘 단속으로 생업을 잃은데 대한 항의다. “내년 1년이면 병든 부모님 모시고 자그마한 가게를 열 수 있었는 데 그만 이렇게 됐다”는 한 소복 여인의 한숨 소리가 깊었다. 성매매가 생업일 수 있느냐는 시비는 그녀에겐 새삼스런 얘기인 것 같다.

타이탄 트럭 행상을 하는 40대 남자는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는 것이 내년의 최대 목표다. 지긋지긋한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장사를 다 해 봤지만 먹고 살기가 바빴다. 소쿠리마다 소복이 담은 감귤 진열앞엔 ‘1000원’이라고 쓰인 팻말이 놓였다. 그렇게 팔아서 언제 빚을 다 갚을진 모르지만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갖는다. 그런 위안마저 없으면 마음이 허전하여 당장 배겨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의 가년스런 삶은 이밖에도 숱하다. 저마다 벅찬 고비에서 좌절하거나 넘겨도 어렵게 넘기곤 한다.

큰 일이다. 경제는 내년에도 어렵다고들 모두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책연구기관이다. 이런 KDI가 내년 성장률을 3%대 후반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형 뉴딜인가 뭔가를 4조~5조원 쏟아 부으면 잘 해야 4% 선을 턱걸이 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성장률을 5%로 잡아 무난할 것으로 보는 것은 이 정부 뿐이다. 성장률 5% 비관론은 여러 민간 연구기관에서도 이미 진단된 분석이다. 성장률이 1% 포인트 떨어지면 약 1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정부가 내년에 내거는 40만개의 일자리 창출 다짐도 허풍일 공산이 높다. 보나마나 목표치 달성에 공공근로나 날품 같은 수치를 마구 꿰어 맞출 것이 거의 분명하다.

무엇보다 제조업이 늘어야 고용이 창출되고 정액소득자가 증가되는 데 도산의 도미노 현상을 맞고 있는 것이 제조업이다. 이 정권의 반기업 정서는 대기업만이 아니고 중소기업까지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으로 냄비 세트가 생산되어 기념식을 가졌다며 야단이다. 물론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인력과 토지가 합작된 남북협력사업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내코가 석자나 빠진 서민 대중들은 그같은 소리가 남의 일로만 들린다.

임시국회 공전을 두고 여야가 으르렁거린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대표는 정통민주세력을 자임하며 냉전수구 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가리는 대회전을 벌이겠다고 야단이다.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단독국회 획책은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쿠데타적 발상이라며 금기선을 넘으면 감당못할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한나라당도 잘한 건 없지만 열린우리당의 잘못이 더 크다. 왜냐하면 상생의 정국을 주도할 책임은 어느 정권이든 언제나 집권 여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귤 한 소쿠리에 1000원을 받고 팔기가 더 급한 서민 대중들은 그같은 정치판 얘기 역시 귀에 들리지 않는다.

‘악어의 눈물’이란 게 있다. 이집트 전설이다. 나일강의 악어가 눈물을 흘리면서 먹이를 유혹하고 먹이를 잡아 먹으면서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거짓 눈물인 것이다. 교활한 위선으로 비유한 것이 ‘악어의 눈물’이다. 민생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짓마다 ‘악어의 눈물’을 연상케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내년엔 또 어떻게 살 것인가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어려운 것도 걱정이지만 정작 삶의 햇빛이 비치지 않는 게 더 큰 걱정이다.

“엄마를 용서하지 말라!”는 기막힌 울부짖음을 이 시대의 권문세도가들은 듣기나 했는 지 잘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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