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는 고학력 여성이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르는 비율이 다시 높아졌다고 한다. 하버드대 클라우디아 골든 교수(경제학) 연구팀은 1990년 대졸 여성의 23%가 결혼한 뒤에도 처녀 때 성을 그대로 썼지만, 2000년에는그 비율이 17% 줄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1980년에는 하버드대 기혼여성 학생 44%가 결혼 전 성을 사용했지만 1990년엔 32%로 감소했다고 한다.
골든 교수 연구팀은 여성해방주의가 득세했던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는 ‘결혼은 남녀의 전쟁터’라는 주장이 여성 사이에 퍼지면서 결혼 전 성을 그냥 쓰는 것이 유행했지만 그후 ‘남녀는 결혼 생활의 동등한 동반자’라는 인식이 미국 사회에 자리 잡았고 여성이 굳이 처녀 시절 성을 고집해 남편과 ‘대립’할 필요를 못느끼게 되면서 거부감 없이 남편 성으로 바꾸고 있다고 해석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호주제를 폐지하였으나 종전의 가족공동체와 호적은 사실상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심지어 자민당의 헌법조회사가 발표한 ‘일본국헌법개정요강안’에는 일정 범위의 ‘가(家)제도 복원’이 헌법개정의 방침으로 되어 있기까지 하다. 일본은 호주제도를 폐지한 결과 성(姓)씨가 3만여 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호주 대법원에서는 호주양부모가 한국입양아의 이름을 호주식으로 바꾸게 해달라는 개명신청에 대해 “태어날 때 붙여진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正體性) 일부이기 때문에 함부로 이름을 바꾸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그제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9명 중 6명이 위헌, 3명은 합헌으로 “호주제는 姓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따라 호주를 승계하는 순위나 혼인 때 신분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며 “양성평등과 개인존엄에 위반된다”고 “호주제는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했다.
세월은 변함없이 유수와 같이 흐르는데 세태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결혼을 하고도 남녀 성을 각각 쓴 것은 아마 호주제 폐지를 일찍이 예고한 것 같다. “내가 잘못 했으면 성을 갈겠다”는 최후의 항변도 머지않아 없어질 듯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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