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에이즈’

소나무 재선충은 0.7~1㎜쯤 되는 지렁이 모양의 외래 선충(線蟲)이다. 다양한 선충 가운데 목재에 기생한다는 이유로 재선충(材線蟲)이라 불린다. 193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뒤 일본(1972) 프랑스(1979) 대만(1980) 중국 난징(1982) 홍콩(1985) 중국 선전(1988) 산둥성(1991)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선충이 침입하면 6일 뒤부터 소나무 잎이 밑으로 처지며 20일쯤이면 잎이 시들기 시작한다. 한 달이 지나면 소나무잎이 급속하게 붉은색으로 변하고 고사가 진행된다. 재선충이 침입하는 나무는 100% 말라 죽는다. 침입한 당해연도에 90%, 그 다음해에 나머지 10%가 고사하기 때문에 불치병을 뜻하는 ‘소나무 에이즈’로 통칭된다.

문제는 퇴치 방법이 거의 없는 점이다. 일본은 방제작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중국 또한 이 병이 창궐한 황산지역에 너비 4㎞, 길이 100㎞의 ‘무송(無松)벨트’를 조성하는 등 손을 놓고 있다. 소나무가 말라 죽는 직접적인 원인은 재선충이 수액을 빨아 먹는 동안 수액 통로를 막는 바람에 솔잎 등 윗부분으로 영양이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재선충은 매개 곤충인 2.2~3㎜ 크기의 솔수염하늘소와의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에 단절하기가 어렵다. 봄철 재선충의 1세대 번식기간은 섭씨 25도에서 4~5일, 30도일 경우 3일이 걸린다. 1쌍이 20일 뒤면 20만마리로 불어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때 재선충은 번데기 상태의 솔수염하늘소의 몸에 침투한 뒤 5월 중순에서 7월 하순까지 부화하는 나방과 함께 3㎞ 이상을 날아가 새로운 소나무에 둥지를 틀게 된다.

솔수염하늘소가 없으면 재선충이 살아 있는 다른 소나무로 옮겨갈 수 없고 솔수염하늘소 또한 재선충이 고사시켜 놓은 소나무가 없으면 알을 낳을 수 없다. 이들의 공생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이 피해 확산을 막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다. 일단 걸리면 치료약이 없고 일제 예방 백신이 있기는 한데 직경 10㎝짜리 소나무에 5만원짜리 예방주사를 3병이나 놓아줘야 한다. 국산 예방 백신을 하루 빨리 개발하지 않으면 민족수(民族樹)인 한국 소나무가 멸종할 지도 모른다. 봄은 오지만 ‘소나무 에이즈’때문에 걱정이 된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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