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Movie
전통적인 비수기인 초봄 극장가에 일본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이어진다. 2월 말부터 잇따라 선보이기 시작한 일본 영화는 ‘피와 뼈’, ‘69’, ‘바이브레이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무도 모른다’ 등 다섯 편 이상.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영화에서부터 순애보를 담은 최루성 멜로물,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에 대한 ‘쿨(cool)’한 묘사를 담은 청춘물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 대기 중이다.
전통적인 비수기인 초봄 극장가에 일본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이어진다. 2월 말부터 잇따라 선보이기 시작한 일본 영화는 ‘피와 뼈’, ‘69’, ‘바이브레이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무도 모른다’ 등 다섯 편 이상.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영화에서부터 순애보를 담은 최루성 멜로물,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에 대한 ‘쿨(cool)’한 묘사를 담은 청춘물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 대기 중이다. 한류 열풍이 일본 내에서 뜨거웠던 지난해, 일본 영화의 국내 성적은 평균 1편당 3만2천명(서울 관객 기준)이었으며 점유율은 2.1%에 그쳤을 정도로 그다지 좋지못했다. 국내에서 일본 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속설. 하지만 이들 영화는 ‘역한류’ 혹은 ‘조용한 대박’을 노리며 국내 관객을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피와 뼈(血と骨, 2월 25일 개봉)= 양석일씨의 베스트 셀러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10대 중반 ‘재패니스 드림’을 안고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온 남자 김준평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력적이며 탐욕적으로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은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했으며 스즈키 교카는 폭력적인 남편이 없어지기만을 바라며 평생을 살아가는 부인 이영희 역을 맡았다. 최근 내한한 최양일 감독은 “이 영화에는 ‘인간의 피와 뼈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바이브레이터(Vibrator, 3월 4일)= 메마른 도시에서 만난 고독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쿨’하게 그린 로드 무비. 기댈 곳을 찾으며 부유하는 젊은 캐릭터들의 매력, 주인공 여성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 감각적인 편집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눈 내리던 밤. 술을 사러 편의점에 들른 르포라이터 레이(테라지마 시노부)의 머리 속에는 오늘도 무수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언젠가 들었던 말들, 잡지 속의 문장, 내면 어디에선가 흘러오는 속삭임 등은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들. 술을 먹고 토하는 ‘취미’는 이런 ‘목소리들’을 잊기 위해 생긴 그녀만의 톡특한 습관이다.
▲69(3월 25일)=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무라카미 류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안도 마사노부나 쓰마부키 사토시 등 ‘꽃미남’ 스타들이 출연한다. 청춘과 록 음악, ‘뻥’을 키워드로 하는 빠르고 감각적인 영상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배경은 1969년 규슈 지방의 한 고등학교. 지역에서 최고로 꼽히는 일류고등학교지만 문제아 겐(쓰마부키 사토시)은 사사건건 선생님들의 지도에 반항을 한다.
‘인생을 즐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그의 신조. 이 학교 최고의 미녀 마쓰이 가즈코(오타 리나)를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그는 ‘데모나 바리케이드를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 ‘거사’를 도모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3월 25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함께 지난해 일본에서 순애보의 열풍을 이끌며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6주간의 아름다운 재회가 기둥 줄거리로, 100만부가 넘게 팔린 동명의 베스트 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주인공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나카무라 시도)과 엄마를 잃은 아들(다케이 아카시). 1년 후 비의 계절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죽은 엄마(아내·다케우치 유코)는 약속대로 장마철에 이들 가족에게 돌아온다. ▲아무도 모른다(4월 1일)=‘원더풀 라이프’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으로 당시 12살이었던 주연배우 야기라 유야는 이 영화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부모 없이 남겨진 네 명의 아이들을 차분하고 과장되지 않은 카메라로 담고 있다. 각각 다른 아버지(혹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기도 한다)와 같은 어머니를 가진 네 아이들은 어머니마저 떠나버리자 스스로 생활해 나가야 하는 곤란에 빠지게 된다. 가장 노릇을 하게 된 큰아이라고 해봐야 12살 어린이.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생활은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방문했던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본 뒤 세상에 나와 이런 아이들을 봤을 때, 한동안 그들에게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면 성공하는 셈”이라며 연출 의도를 설명한 바 있다.
■여자 정혜
아픈 상처 지우는 ‘사랑의 묘약’
우편 취급소와 TV 홈쇼핑, 고양이… 이 여자, 정혜(김지수)의 일상은 까닭없이 평화롭다.
직장인 우편물 취급소에서의 단조로운 일과와 TV 홈쇼핑으로 사들인 물건들로 채워진 작은 집,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 온 어린 고양이.
이것들은 그녀만의 작은 세상을 구성하는 몇 안되는 것들이다. 각박하고 폭력적인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조용한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사실 지금의 세상과의 소통을 막는 과거의 아픈 상처가 있다.
영화는 여성의 내면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여주인공 김지수의 열연, 사랑과 상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등으로 이들 영화제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배우 김지수의 발견’ 혹은 ‘2004년 한국 영화의 발견’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흔히들 하는 얘기지만, 사실 의심스러운 말이다. 아픔을 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듯한 소란스러운 세상, 이 속에서 사랑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히려 또 다른 부담일 수 있다. 과연, 영화가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무표정 속에서 속시원한 결론을 보여주고는 있지 않지만 영화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여자와 그녀의 가슴 속에 묻혀 있는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내던 이 영화는 희망의 희미한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정혜에게도 사랑이란 보이지 않을 듯 희미해 보이는 가능성 같은 것이다.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들과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녀. 사람들은 그녀가 불행할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사실 과거는 고통이라기보다는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 혹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막고 서 있는 어떤 것들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황정민)가 그녀의 일상에 끼어든다. 작가 지망생인 그는 자신의 원고를 부치기 위해 정혜의 우체국을 찾는다. 정혜는 그에게 묘한 설렘을 느끼고 용기를 내서 말한다.
“저희 집에 오실래요?”
언뜻 보기에 단조롭고 평범해 보이지만 영화는 우리 일상 속에 공존하는 불안과 폭력, 그리고 행복과 희망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자극적인 영화보다도 더 진한 울림을 준다.특히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과거의 슬픔과 고통이 분출되는 후반부는 극장 문을 나서고 나서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강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다. 공감 속에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주인공 정혜를 연기하는 여배우 김지수의 힘과 100% ‘들고 찍기’로 촬영해 순간 순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카메라의 덕이 크다. 특히 그동안 TV 드라마에서 개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김지수라는 배우를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 보게 되는 것은 관객으로서도 큰 기쁨이다. 단편 ‘우리 시대의 사랑’을 만들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던 이윤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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