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7월10일 160여 명의 유대인이 나치 독일 점령하의 폴란드 예드바브네 한 농가 헛간에 갇힌 채 불타 죽었다. 2차대전 종전후 폴란드 공산정권은 폴란드와는 무관한 나치 독일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치의 묵인아래 폴란드인이 저지른 만행임이 밝혀지자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즉각 사과했다.
“나는 지금 한 사람의 시민으로, 폴란드 대통령으로,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은 폴란드인의 이름으로 사과합니다”라고 했다. 2001년 7월10일 예드바브네 학살 현장에서 유대인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추모식서 있었던 일이다. 학살 당시 단 한 사람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페시노비츠는 “이곳까지 와 진심으로 사과하는 대통령의 용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지난 2월 2일 이스라엘 의회에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겸허하게 머리를 조아립니다”라며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사건을 사과했다. 약 30분간의 사과 연설을 하는 동안 가끔 목이 멘 듯 말문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방청석에서 남편을 지켜보는 부인 에바 여사 역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의회 연설에 앞서선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 기념관을 사죄 방문했다.
일제의 2차대전 패전 당시 지지대子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도 보고 징용으로 끌려가는 것도 보았다. 학병이나 징병의 강제 입영은 역까지 나가 거창한 환송을 하는 학생 동원을 했으면서도, 위안부나 징용은 새벽녘이나 밤에 쉬쉬해가며 끌어가곤 했다.
일본 후쇼사 역사교과서 2005년 개정판이 역사 왜곡을 시정하기는 커녕 더 심하게 왜곡하여 말썽이 되고 있다. 대동아전쟁(2차대전)을 미화하는 등 역사 왜곡의 망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중에 “종군위안부 강제 연행은 일본을 규탄하기 위해 날조됐기 때문에 아예 다룰 필요가 없다”고 까지 어거지를 썼다.
독일 등의 과거사 사죄에 비하면 이건 완전히 적반하장이다. 위안부로 끌려가 인생을 망친 희생자가 아직도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판에 날조됐다고 우긴다. 일본사람 개인으로 만나면 그렇지 않아도 나라 얘기를 하는 덴 이토록 판이한 게 일본이다. 가깝게 하기엔 너무 먼 나라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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