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열린 시스템의 우위성

경제·경영학자 가운데 실제(實際)에 크게 기여한 사람을 꼽으라는 질문을 받으면 누구라고 할까하고 반문해 볼 때가 있다. 우선은 1776년에 국부론(國富論)을 통해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오는데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아담 스미스일 것이고, 그 다음은 아무래도 1929년 세계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대한 치유책을 마련했던 케인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일까의 견지에서는 그 답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력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다른 주의·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거대한 패러다임이동(paradigm shift)이 진행되자 그에 대한 적응력이 없던 구공산권이 1980년대 중반에 붕괴한 사실이라든가 아프간 및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사력이 보여주는 바는 뛰어난 기술력이야말로 국력의 궁극적인 원천임을 강하게 시사해 준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라면 기술혁신이 곧 성정발전의 원동력이고 혁신의 주체가 기업가(entrepreneur)라고 1936년에 갈파한 슘페터야말로 대단한 예견력을 지닌 학자로 인정해야 될 것 같다. 또 같은 맥락에서 기술변화(technological change)가 경제성장-발전-변화의 동인이라며 신슘페터리안(neo-Schumpeterian)을 자처하는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의 효시인 넬슨과 윈터를 그 다음으로 꼽고 싶다.

이 외에도 신고전경제학의 기본 전제와 가정에 도전해 공을 세운 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사이몬이다. 그는 실제세계에서 신고전경제학에서의 전제나 내용이 실제로 추구되거나 중시되지도 않는 점을 인지하고 신고전경제학에서의 합리적 경제인 ‘완전한 합리성’ 최적화 대신에 사회인(social man)관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기초한 만족화(satisficing)의 의사결정론으로 신고전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물론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경영학자로서는 현재까지 유일한 노벨경제학수상자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국력의 원천이 기술력이라는 명제 하에 기술력확보를 국책(國策)으로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R&D투자비의 약 80% 정도가 국방성(Department of Defense:DOD)의 주도 하에 집행되고 있다. 국방성에서는 대학교와 연구기관에 경쟁방식을 통해 연구프로젝트를 수행시킴으로써 가장 최신의 기발한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하여 온갖 첨단신기술의 대부분을 국방성이 보유한다. 그리고 이들 보유첨단기술 중에서 실용성이 큰 기술을 우선 군(軍)에서 사용한 후 민간부문에 전수시키는 방식으로 미국의 군사력과 기술력에 바탕을 둔 경제력을 기본으로 Pax Americana시대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기술 확보 메커니즘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의 거대한 디지털혁명기를 거치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반면에 구소련은 결과의 평등(equality of consequence)을 강조하는 공산이념으로 인해 기술변혁에 적응할 동력을 잃고 1985년에 결국은 붕괴하고 말았다. 미소양극체제(兩極體制)에서 막강한 파워를 보여주던 구공산권이 왜 하필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렇게 쉽게 붕괴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명쾌하게 이해시켜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미국의 기술우위확보 메커니즘은 ‘기술력 없이는 어떤 이념(理念)도 국가(國家)도 체제(體制)도 제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웅변해 준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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