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에서 조업하던 울릉도 어민들이 일본 순시선에 쫓기는 등 일본의 독도침략이 계속되자 어민과 독도를 지키기 위해 1953년 4월 26일 결성된 민간 수비대다. 당시 울릉도 주민이었던 홍순칠(1929~1986) 대장을 비롯, 6·25 전쟁에 참전했던 젊은이 33인으로 결성됐다. 이어 그해 6월 28일부터 7월1일까지 독도에 무단 상륙한 일본인을 몰아내면서 일본 영토 표지를 철거했고, 독도의 동도 암벽에 ‘한국령(韓國領)’을 새겼다.
이듬해 8월에는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오키호와 총격전을 벌이는 등 1956년 12월 경찰이 독도방위 임무를 떠맡기까지 3년 8개월 간 독도 지키기의 선봉에 섰다.
일본 전투기가 다가올 때는 울릉도에서 실어온 큰 나무에 검은 칠을 해 마치 대포처럼 보이며 위협하기도 했다. 보급품이 떨어져 며칠씩 굶는 것은 다반사였고 빗물을 받아 마시며 연명했다.
홍순칠 대장은 고종의 칙령을 받아 울릉도로 이주한 홍제현의 손자로 6·25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한 용사였다. 홍 대장은 “독도는 우리 땅이니 절대 왜놈들이 얼씬 못하게 지켜라”는 조부의 유언을 실천에 옮긴 의혈청년이었다. 홍 대장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 부산임시청사를 다니며 독도수비대 창설을 건의했으나 성사가 안돼 울릉도 주민과 참전용사 33인을 이끌고 독도점유를 강행하였다.
독도의용수비대 33인 중 홍 대장은 1986년 척추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현재 12명이 생존해 있는데 16일 일본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를 통과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가 일찍이 독도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지금의 영토분쟁은 없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6·25 전쟁 직후, 한국의 혼란을 틈타 독도를 일본이 점령했을 때 일본인들을 몰아내고 영토를 사수했던 독도의용수비대원들 중 생존자 7~8명은 지금 거동도 못하는데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가는 처지다. 독도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겠다는 것을 말리지는 않지만 우선적으로 어렵게 사는 수비대원과 유가족을 돕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50년 전 그때 만일 수비대원들이 독도를 못지켰다면? 수비대원들의 애국심과 용맹이 생각할수록 훌륭하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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