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엽면시비 할만한 것인가?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인도네시아의 한 관광지에서 겪은 일이라고 했다. 어떤 오락장에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입장을 관리하는 사람이 다가와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갔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입장시키더라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입장하다가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한국 손님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줄을 섰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일쑤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을 잃게 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민망해서 도로 나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했다고 했다.

까닭 없이 일을 꾸물대며 하는 것은 물론 좋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늘 일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도 좋지 않을 것이다. “바쁘다, 바빠!” “빨리 빨리!” 이런 말들이 한국 사람들의 입에 늘 붙어 다니는 말로 여기는 외국인들이 많은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게으른 이들이라고 여김 받는 편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늘 바쁘게 서둘러 일을 신중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로 여겨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일은 자연과 대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김매기를 하고 병과 해충이 범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 모두 자연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농사는 말 못하는 자연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특히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에 대해 야단을 칠 수도 없는 일이고 매를 들 수도 없는 일이다.

씨앗을 땅에 심었을 때 땅의 온도가 알맞고 땅에 물기와 공기(산소)가 알맞게 들어 있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싹이 나서 자라게 마련이다. 씨앗에서 싹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어린 식물은 씨앗에 들어 있는 양분으로 자라지만 식물이 어느 정도 커지면 땅에 들어 있는 양분과 스스로 광합성을 통해 얻은 것으로 자라고, 자라는 정도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다음 대를 이어갈 준비를 한다. 종자나 살찐 뿌리를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농작물이 광합성을 하는 기관은 잎이다. 그러나 농작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에 필요한 질소, 인, 칼슘, 마그네슘, 황, 철, 망간, 아연, 구리, 붕소, 염소, 몰리브덴 같은 양분원소들과 물은 뿌리를 통해서 얻는다. 그런데 작물의 뿌리는 땅에 있다. 땅에 작물이 필요로 하는 양분원소들과 물을 땅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농사를 남다르게 잘 지어보려는 이들 가운데 작물의 잎에 비료나 그 밖의 다른 양분 같은 것을 뿌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과채류나 과수를 기르는 이들 가운데에 그런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작물의 잎에 작물의 양분을 뿌리는 일이 전혀 효과가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문만큼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에든 바른 길과 지름길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지름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역시 바른 길이 바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급해도 바른 길로 가라는 뜻일 것이다.

작물의 양분은 뿌리를 통해서 흡수시키는 것이 바른 길이다. 거름을 땅에 알맞게 주고 물을 잘 관리하면 작물 잎에 이런 저런 값비싼 것을 써서 작물에 필요한지도 모르는 양분을 흡수시키려는 피곤하고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을 부르기까지 할 수 있는 이른바 엽면시비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바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 바느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홍 종 운 토양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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