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종합병원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계획대로라면 2007년에 ‘문화재종합병원’이 설립된다. 진료실·실험실·수장시설·연구실 등을 갖출 문화재종합병원은 문화재 치료법과 효과적인 예방보존 방안을 연구개발, 보급하고 손상문화재에 대한 종합적, 과학적인 보존진료를 시행한다.

생소하지만 문화재종합병원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이 회복불능의 ‘중병(멸실·훼손 직전)’에 걸려 있으나 응급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령이 되면 노쇠하거나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것 처럼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에겐 병원이 있지만 문화재는 치료기관(보존처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에는 의료기술(보존관리 방법)부족 등의 이유로 회복(원형 복원)이 어려운 중환자(국보급 유물)들이 상당히 많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 중 한지에 밀랍이 도포된 책들이 대표적으로 복원이 쉽지 않은 사례다. ’태종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614책 중 415책이 밀랍본인데, 이 중 131책이 밀랍 경화로 얼룩이 지고 한지가 떨어져 나가거나 들러붙는 등 훼손이 심각하다. ‘세종실록’은 154책 중 86책이 밀랍으로 심하게 손상됐다.

1973 ~ 1975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옥충안교(말 안장 가리개)’는 보존처리 방법을 못찾아 발굴 후 현재까지 글리세린용액에 넣어 보관 중이다. 목재와 비단, 금동, 옥충(비단벌레)의 날개를 혼합해 만들어진 이 유물은 목재와 금동, 옥충 날개 모두 썩거나 부식되는 등 약화돼 있어 종합적인 보존처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구례화엄사 화엄석경’, 순천 송광사 소장 ‘경질’ 등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표면 오염물질 증가와 균열발생, 안료박락 등으로 훼손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들 환자를 치료해야 할 종합병원 건립과 의사(전문인력) 채용이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의 협조를 못 받아 표류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중환자들이 다 죽은 뒤 병원을 세우려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